설비 낡아 재가동 ‘조마조마’ 주민 반발 속 재건설 ‘악전고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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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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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령 서울 마포구 당인리 화력발전소 르포

서울 마포구 당인리 화력발전소에서 한국중부발전 직원들이 공기압축기를 분해해 점검
하고 있다. 지은 지 40년이 넘은 이 발전소는 주말마다 정비를 거쳐 힘겨운 전력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 마포구 당인리 화력발전소에서 한국중부발전 직원들이 공기압축기를 분해해 점검 하고 있다. 지은 지 40년이 넘은 이 발전소는 주말마다 정비를 거쳐 힘겨운 전력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9일 서울 마포구 당인동 ‘당인리 화력발전소(서울화력발전소)’. 집채만 한 증기발생기와 터빈 사이로 우뚝 솟은 굴뚝을 자세히 살펴보니 군데군데 도색이 벗겨져 있었다. 발전소 꼭대기에 올라가서 본 증기발생기 외벽은 강판을 여러 번 덧대 누더기를 연상시켰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한국중부발전 관계자는 “올해로 44년째를 맞는 노후 발전소라 정비할 곳이 많지만 2년 뒤 폐쇄할 예정이어서 최소한의 경비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발전소는 이미 폐쇄된 1호기가 1930년 가동을 시작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화력발전소다. 동시에 서울에 있는 유일한 화력발전소이기도 하다. 설계수명 30년을 훌쩍 넘겨 아직도 운영 중인 4호기(1971년 준공)와 5호기(1969년 준공)도 두 차례에 걸친 수명 연장 끝에 2014년 12월에는 폐쇄할 예정이다.

“매주 월요일 오전 5시에 현장 팀장이 재가동을 알리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데 조금만 늦으면 속이 타들어 갑니다.”

이날 만난 고경열 당인리 화력발전소장은 발전소 정비를 위해 가동을 멈췄다가 재가동할 때마다 바짝 긴장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워낙 낡은 발전소이다 보니 주말마다 정비해 버티는 악전고투를 벌이는데 조금이라도 재가동 시간이 늦어지면 발전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9·15 대정전 사태 이후 전력공급에 비상이 걸려 재가동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본사의 질책이 떨어진다. 재가동이 지연되면 공기업 직원들의 인사와 성과급을 좌우하는 경영평가 점수도 깎인다.

정부는 수명이 2년여 남은 당인리 발전소를 대체하기 위해 같은 용지 지하에 800MW짜리 신형 화력발전소를 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4, 5호기가 있는 지상에는 박물관과 미술관, 공원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그러나 다음 달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던 공사는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착공 시기마저 불투명한 상태다. 이들은 정부와 중부발전이 한때 약속한 대로 발전소를 경기 고양시로 이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력당국은 애당초 현 위치에 대체 발전소를 짓기로 했었으나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2008년 고양시 이전을 추진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반대에 부닥쳤다. “서울 주민들이 기피하는 혐오시설을 왜 우리 동네에 들여오느냐”는 항의가 들끓은 것이다.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정부 계획대로 2014년 말까지 준공하려면 아무리 늦어도 올 10월에는 공사에 들어가야 하지만, 중부발전은 아직 마포구에 실시계획인가 신청서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주민 여론을 의식한 마포구가 지난해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중부발전이 제출한 신청서를 모두 반려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정전으로 지식경제부 장관이 경질될 정도로 전력수급 차질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높지만 정작 “우리 동네에는 발전소를 둘 수 없다”는 이기적인 태도가 우리 사회에 팽배하다. 지경부에 따르면 주민 반대로 올해 가동에 들어가지 못한 발전소 용량은 서울 복합화력 1, 2호기와 양주복합화력발전소 1호기 등 총 450만 kW에 이른다.

정부는 고육책으로 기존 노후 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1978년 준공돼 2008년 수명 연장(10년) 결정이 난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는 올 2월 정전 은폐사고로 주민들 사이에서 폐쇄론이 힘을 얻고 있으며, 올 11월 설계수명이 끝나는 월성원전 1호기도 벌써부터 수명 연장과 관련해 논란이 뜨겁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마포구#화력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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