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침대보다 더 과학적인 변기, 예술 소재-환경 해결사로 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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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가 천덕꾸러기? No, 인류 밝혀온 보물덩어리!

마르셀 뒤샹의 ‘샘’(왼쪽)은 일상 생활용품의 가치가 가장 극대화된 사례다. 저 변기 하나가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톡톡 튀는 디자인의 변기들이 화제를 몰고 온다. 오른쪽 사진은 독일 니더작센 주 뤼호 시의 ‘롤링스톤스 팬 박물관’에 있는 믹 재거 입술 모양 소변기. 동아일보DB
마르셀 뒤샹의 ‘샘’(왼쪽)은 일상 생활용품의 가치가 가장 극대화된 사례다. 저 변기 하나가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톡톡 튀는 디자인의 변기들이 화제를 몰고 온다. 오른쪽 사진은 독일 니더작센 주 뤼호 시의 ‘롤링스톤스 팬 박물관’에 있는 믹 재거 입술 모양 소변기. 동아일보DB
최근 ‘내 아내의 모든 것’이라는 영화가 화제가 됐다. 흥행도 성공했고, 관객들의 평도 좋았다. 혹시 영화를 보았다면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극 초반의 ‘화장실 신’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임수정이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변기에 앉은 이선균에게 ‘모닝주스’를 건네던 그 장면 말이다. 그건 아마 ‘아리따운’ 임수정과 ‘지저분한’ 변기가 빚어낸 언밸런스 코드가 뇌파를 강렬히 자극했으리라.

변기는 우리에게 은밀하고, 지저분하고, 대놓고 말하기엔 좀 멋쩍은, 그런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하지만 변기에 관한 다양한 이야깃거리는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침대는 과학’이라고 하지만, 과학적인 설계라면 변기도 이에 못지않다. 더구나 변기는 최근의 심각한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도 직접적으로 결부돼 있다.

혹 아침시간이나 식사시간이라고 꺼림칙하다거나 민망하다는 생각이 드는가. 오늘만큼은 자신의 배설물 앞에 떳떳하지 못했던 이선균이 되지 말고, 보다 솔직했던 임수정이 되어 보자. 준비가 됐는가. 그렇다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변기와 놀아 보자.

[채널A 영상]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 예술이 되다
■ 변기의 화려한 변신은 ‘무죄’

지난달 말 월스트리트저널 일본판은 도쿄 외곽의 이치하라 시에 있는 ‘세계 최대의 화장실’(시공사 주장) 이야기를 보도했다. 4월 초 일본 NHK에서도 소개한 이 화장실은 200여 m²(약 62평) 규모의 정원 한가운데에 변기가 딱 하나 설치된 형태다. 변기는 투명한 유리부스 안에 들어 있다. 커튼만 치지 않으면 주변의 원목과 화분을 감상하면서 ‘볼일’을 볼 수 있다. 이치하라 시는 관광객을 유치할 목적으로 이런 화장실 2개를 운영하는 데 연간 987만 엔(약 1억4500만 원)이 든다고 한다.

이 사례는 변기라는 은밀한 물건을 개방된 공간에 설치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것이다. 변기의 변신은 이젠 흔한 풍경이 됐다. 남성용 소변기를 아래위로 한껏 벌린 입 모양으로 디자인한다든지, 색소폰이나 담배 파이프 모양으로 만드는 따위다. 세브비아의 산업디자이너 밀로스 파리포비치는 미국 애플사의 사과 모양 로고를 패러디한 ‘아이푸(iPoo)’ 디자인을 블로그에 올려 주목받기도 했다.

변기의 ‘일탈’에도 원조가 있다. 마르셀 뒤샹(1887∼1968)의 ‘샘(Fountain)’이 그 주인공. 뒤샹은 1917년 시장에서 산 평범한 소변기에 ‘R. Mutt’라고 사인한 뒤 가명으로 뉴욕의 독립미술가협회 전시회에 출품했다. 샘은 결국 전시장 한쪽으로 치워져버렸지만, 20세기의 가장 주요한 미술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뒤샹은 샘의 사진을 실은 잡지에 “욕조가 부도덕하지 않은 것처럼 작품 ‘샘’은 부도덕한 것이 아니다. 새로운 제목과 관점을 부여하고, 원래의 실용적 특성을 상실시키는 장소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라고 밝혔다. 샘의 모작(원작은 첫 구입자가 잃어버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 하나는 미국 소더비 경매에서 1990년대 후반 176만 달러에 팔렸다. 2004년 영국 ‘올해의 터너상’ 시상식에 참석한 미술계 인사 500명은 샘을 ‘20세기 100년 동안 가장 영향력을 크게 미친 작품’ 1위로 꼽았다.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1907)과 앤디 워홀의 ‘메릴린 먼로 2면화’(1962)가 2, 3위였다.

한편으로 변기는 훌륭한 투자 상품이 되기도 한다. 영국의 대안투자 전문가인 토비 월른은 그의 책 ‘문화로 재테크하다-바비 인형에서 골동품 변기까지’(2011·이마고)에서 “고풍스러운 욕실용품에 대한 급격한 수요 증가로 빅토리아 시대의 변기는 지난 10년간 가격이 4배나 올랐다. 19세기 말 변기가 지금은 180만 원이 넘는다. 수조와 오리지널 나무시트가 함께 있다면 360만 원, 멋진 그림이라도 장식돼 있다면 희소성 때문에 가격은 700만 원을 훌쩍 넘을 수 있다”고 썼다. 다만 변기는 수집용보다는 개인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어서 상태가 최상이 아닐 경우 가격이 뚝 떨어질 수 있다고 그는 조언했다. 그는 이어 1594년 존 해링턴 경이 자신과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위해 만든 2개의 변기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고 전하며 “만일 나타난다면 부르는 게 값일 것”이라고 했다. 이쯤 되니 유럽에선 재건축 현장이나 골동품상에서 변기를 찾아 헤매는 사람이 더러 있을 법하다.

■ 과학으로 탄생한 변기

2004년 11월에서 2005년 8월까지 이어졌던 경남 창녕군 부곡면의 ‘비봉리 발굴조사’에서는 역사학적으로 가치 있는 유물이 다수 발견됐다. 그중 하나가 분석(糞石·똥 화석)이었다. 국립김해박물관 측은 당시 현장설명회에서 “신석기시대 것으로는 처음 출토되는 자료다. 이를 과학적으로 조사하면 당시의 먹을거리는 물론이고 기생충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당연한 말이지만 고대 우리나라에도 화장실이 있었다. 또 언젠가부터는 변기도 썼다. 국립부여박물관에 전시된 백제시대 남성 변기인 ‘호자(虎子)’가 대표적이다. 마치 새끼호랑이가 앉아 있는 듯한 모양이 독특함을 뽐낸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에서 출토된 이 토기는 1970년대 후반부터 부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박물관의 고문경 학예연구사는 “백제의 호자는 중국 남조시대 때 만들어진 청자 호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에는 최고급 귀족계층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중국 청자 호자는 현재 서울 용산구의 국립중앙박물관에도 한 점이 소장돼 있다. 개성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진 이 호자는 똑바로 앞을 보고 있는 형태지만, 백제의 호자는 왼쪽으로 고개(소변을 보는 입구가 있는 부분)를 틀고 있어 느낌이 좀 다르다.

부여박물관에는 여자용 토기 변기도 있다. 양쪽에 손잡이가 달려 있어 쉽게 옮길 수 있고, 앞쪽보다는 뒤쪽이 살짝 올라가 있어 앉았을 때 편안함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게 특징이다. 지난해 여름 국립고궁박물관의 ‘창덕궁 특별전’에서 처음 공개된 임금의 변기 ‘매화틀’에 비하면 초라해 보이지만 백제 때 이미 이동식 용변기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인 대부분이 사용하는 수세식 변기는 언제 개발된 것일까. 수세식 변기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4000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변기는 18세기 후반 등장했다. 그 이전에는 재래식 화장실에 좌변기만 얹어 앉기에만 편했을 뿐 냄새는 여전했다. 1775년 영국의 알렉산더 커밍스는 변기 아래에 S자 모양의 파이프를 설치하고 중간에 물이 고여 있도록 설계했다. 물이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냄새를 차단하는 방어벽 역할을 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통찰의 기술’(신병철·2010년·지형) 참고

우리나라에서는 1958년 완공된 최초의 아파트인 ‘종암아파트’를 통해 수세식 변기 보급이 본격화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1986년을 전후해서는 아파트 한 채에 화장실이 2개 이상 들어가는 경우가 생겨났다. 서양 변기는 그렇게 한국 가정을 빠르게 잠식했다.

백제시대 토기인 ‘호자’는 남성 전용 소변기이고(왼쪽), 같은 시대의 ‘변기’는 여성이 주로 사용한것으로 보인다. 국립김해박물관 제공
백제시대 토기인 ‘호자’는 남성 전용 소변기이고(왼쪽), 같은 시대의 ‘변기’는 여성이 주로 사용한것으로 보인다. 국립김해박물관 제공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경남 비봉리유적지에서 한국 최초로 발견된 선사시대 분석(똥 화석). 국립김해박물관 제공
국립부여박물관 제공 경남 비봉리유적지에서 한국 최초로 발견된 선사시대 분석(똥 화석). 국립김해박물관 제공
■ 과학자에게 고발당한 변기

‘빗물박사’로 유명한 한무영 서울대 교수(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는 지난해 한 인터넷매체에 ‘수세변기를 고발한다’는 칼럼을 썼다. 그는 변기에 △물을 많이 사용한 죄 △깨끗한 물까지 더럽게 만든 죄 △땅과 섞여야 할 것을 물에 섞은 죄 등 9가지 죄를 물었다. 한 교수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인 수세식 변기가 환경에는 최악의 선택이 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2005년 상하수도학회지에 투고한 보고문에서 “가정에서 가장 많은 물을 사용하는 곳은 화장실로 생활용수의 50∼60%를 차지한다”며 “이를 절약하기 위해 나노테크놀로지(NT)를 활용한 건조 변기(Dry Toilet)나 물 없는 소변기(Waterless Urinal) 사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 교수는 ‘O₂’와의 통화에서도 “물을 아낀답시고 변기 물탱크에 벽돌 한 장 넣어 봐야 1L 아끼는 것밖엔 안 된다”며 “독일처럼 절수형 변기 사용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한국의 중소기업 중에도 이런 절수형 변기를 개발하는 곳이 여럿 있다. 베스트오토앤시트의 ‘자동물내림’ 같은 제품이 대표적. 원리는 물을 대변에는 많이, 소변에는 적게 쓴다는 것이다. 변기는 사람이 앉았다 일어나면 그 시간을 감지해 ‘1분’을 넘으면 대변, 넘지 않으면 소변으로 판단해 그에 상응하는 물의 양을 보낸다. 이 회사 장석환 대표는 “이미 여러 곳에서 절수 효과가 5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아예 수세식 변기를 탈피한 ‘퇴비화 변기’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은 변기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미래형 변기는 퇴비화 변기”라고 소개한 바 있다. 이는 배설물과 사용한 화장지 위에 ‘벌킹제’라 불리는 소나무 대팻밥 한 줌을 뿌려줘 분해를 촉진하는 방식이다. 그러면 천문학적 숫자의 박테리아가 벌킹제의 도움을 받아 인간의 배설물을 먹어치우고, 수분은 1년 내에 완벽하게 증발한다. 자연으로부터 먹이를 얻었던 인간의 배설물이 변기를 통해 자연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변기#마르셀 뒤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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