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농민들, 녹차밭 대신 마트서 앞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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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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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감소에 직접 상경홍보 “다이어트-암예방에 효과”

윤팔한 보성유기농녹차협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녹차 재배농민들이 22일 서울 용산역 이마트 매장에서 고객에게 햇녹차를 권하고 있다. 이마트 제공
윤팔한 보성유기농녹차협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녹차 재배농민들이 22일 서울 용산역 이마트 매장에서 고객에게 햇녹차를 권하고 있다. 이마트 제공
“아주머니, 살 빼는 데는 이 녹차만 한 게 없어요. 한 번 드셔 보세요.”

22일 오전 서울 용산역 이마트 매장에서는 주부 판촉사원 대신 검게 그을린 얼굴의 남성들이 손님들에게 녹차를 권하고 있었다. 국내 녹차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전남 보성군의 녹차 재배 농민들이 상경해 앞치마를 두르고 판촉·시음행사를 벌인 것이다.

농민들이 자신이 키운 작물을 홍보하러 상경하는 보기 드문 일이 벌어진 것은 최근 커피의 인기에 밀려 녹차 수요가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이마트에 따르면 커피 제품은 수년째 연평균 20%가량 판매가 늘고 있는 반면 녹차는 비슷한 폭으로 매출이 줄고 있다. 특히 원두커피를 즐기는 사람이 늘면서 저가의 티백 제품보다는 고급 잎녹차 제품 매출이 더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보성지역의 녹차 재배면적은 2008년 11.64km²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에는 10.63km²로 감소했다. 5년간 축구장 150개를 합친 것보다 넓은 녹차 밭이 사라진 것이다. 이날 시음 행사장에서 만난 보성유기농녹차협회장 윤팔한 씨(72)는 “녹차나무를 심어서 첫 수확을 하려면 5년을 기다려야 한다”며 “그렇게 애써 가꾼 녹차 밭을 갈아엎는 농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윤 씨는 “녹차를 꾸준히 마시면 살이 빠지고 몸도 자연스럽게 건강해진다”며 자신이 산증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위암과 혈액암으로 두 차례에 걸쳐 큰 수술을 받은 뒤 의사의 권유로 10여 년째 매일 1L 이상의 녹차를 물 대신 마시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해 초 병원에서 완치 판정을 받았다. 윤 씨는 “한때 ‘농약 녹차’ 파동으로 시끄러웠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녹차 농가가 철저하게 유기농 또는 무농약 재배를 한다. 안심하고 마셔도 좋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녹차 농가의 이런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올해부터 전남 보성과 제주 지역에 총 9만9000m² 면적의 계약농장을 지정해 햇녹차를 사들이기로 했다. 대량 매입을 통해 원가를 낮춰 고급 녹차제품 가격을 기존보다 20% 내리겠다는 것이다. 또 140여 개 전 점포에서 대대적인 판촉·시음 행사도 벌일 예정이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녹차 농민#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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