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이진석 기자의 Car in the Film]코롤라 in 이터널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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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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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듯 특별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코롤라의 추억’


잊고 싶은 기억이 몇 개나 되나요. 생각을 더듬어 되짚기에는 너무도 아픈 기억들. 괴로워 잠 못 이루던 밤은 또 얼마나 되나요. 세월이 지나면 기억은 조금씩 흐릿해지겠지만 그 흔적마저 씻어내기는 쉽지가 않겠죠. 얼핏 우스운 상상이겠지만, 만약에라도 원하는 대로 기억을 지우는 일이 가능하다면 과연 당신의 선택은 무엇일까요?

미셸 공드리 감독의 2004년작 ‘이터널선샤인(원제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은 간밤 사이 옆 부분에 커다란 상처가 난 낡은 자동차를 조명하며 시작됩니다. 어리둥절해진 주인공 조엘(짐 캐리 분)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평소의 출근길 대신 미국 뉴욕 주 롱아일랜드 끝자락의 관광지 몬톡(Montauk)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던집니다.

홀로 바닷가를 거닐던 조엘은 어디선가 본 듯한 파란 머리의 여주인공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즐릿 분)을 만납니다. 한 번은 마주친 듯한,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 둘은 알 수 없는 친숙함을 느끼며 조금씩 가까워집니다. 조엘의 낡은 차에 클레멘타인이 올라타고, 그렇게 사랑이 시작됩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조엘과 머리색을 수시로 바꾸는 자유분방한 클레멘타인. 몬톡의 눈밭처럼 눈부시던 두 사람의 시간은 조엘의 낡은 차처럼 점차 빛이 바래갑니다. 결국 둘은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뇌파 조작을 통해 기억을 지워낸다’는 찰리 카우프만의 기발한 상상력이 빛나는 각본은 두 주인공을 조금씩 혼돈으로 몰고 갑니다. 과거와 현재를 숨 가쁘게 오가며 조각난 기억을 퍼즐처럼 맞추는 연출은 이들의 심정을 대변합니다.

“제발 멈춰요!” 사라지는 기억 속에서 조엘은 후회하고 절규합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서서히 지워지는 기억을 조금이라도 남겨달라고. 아무리 아픈 추억일지라도 차마 떠나보낼 수는 없다고. 과연 두 연인에게 재회의 기적은 찾아올까요. 영화는 긴박함과 애절함을 넘나들며 엔딩 크레디트를 향해 쉴 새 없이 치닫습니다. 유명 프로듀서 존 브리온이 제작을 맡은 OST는 배우들의 호연과 더불어 긴장감과 서정성을 조금씩 높여갑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조엘의 ‘코롤라’는 대중차의 대명사이자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대표적인 준중형 세단입니다. 최초 모델은 1966년 출시됐으며 미국에서는 싼 가격과 잔고장이 없는 무난한 성능으로 높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전 세계에서의 누적 판매량은 3900만 대 이상.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로도 유명하죠. 영화 속 모델은 1995∼2000년 생산된 8세대(코드명 E110)이며 도요타는 현재 11세대 코롤라의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바꾸는 촉매는 함께한 추억입니다. 누구나 첫 차를 잊지 못한다고 하죠. 혹시 아끼던 낡은 차를 찬찬히 살펴보신 적이 있나요. 크고 작은 흠집들이 차에 남겨지던 순간들은 기억이 나시는지요. 숱한 추억이 새겨진 차는 단순한 물건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늦은 밤 혼자 운전석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아보세요. 차와 함께했던 순간들. 스쳐지나간 거리의 풍경. 그리고 그 옆을 지켰던 누군가가 떠오를 겁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자동차는 달리고 있겠죠. 차마 지울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 될 순간들을 곳곳에 아로새기며.

이진석 기자 ge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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