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상에 따라잡힌 소니… 시마 사장은 日 구조조정을 외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1일 03시 00분


■ 日 인기만화 ‘시마 시리즈’ 저자 히로카네 겐시가 보는 한국과 일본

히로카네 겐시 씨의 작업실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방대한 책과 사진 자료로 가득차 있다. 오른쪽은 히로카네 씨가 동아일보 독자들에게 보낸 사인과 메시지. ‘동아일보 독자 여러분 건강하세요’라고 쓰여 있다.
히로카네 겐시 씨의 작업실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방대한 책과 사진 자료로 가득차 있다. 오른쪽은 히로카네 씨가 동아일보 독자들에게 보낸 사인과 메시지. ‘동아일보 독자 여러분 건강하세요’라고 쓰여 있다.
“이제 일본 기업들이 제조업 세계 1위라는 명성을 되찾기는 힘들 겁니다. 새로운 기업전략이 필요하지만 한국 기업들 때문에 좀처럼 여유가 없습니다.”

일본의 인기 기업만화 ‘시마 시리즈’의 저자 히로카네 겐시(弘兼憲史·64) 씨가 바라보는 일본의 미래는 밝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 전기전자기업의 사상 최악의 적자에 대해 “잘나가던 향수에 젖어 오랫동안 내수시장에 안주해온 업보”라고 지적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11일 도쿄(東京) 네리마(練馬) 구에 있는 히로카네 씨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100m² 남짓한 아파트를 개조해 만든 작업실에는 보조만화작가(어시스턴트) 4명이 바쁘게 배경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마감을 하느라 10여 분이 지나 나타난 그는 “현재 ‘시마 사장 편’ 외에도 연재하고 있는 만화가 두세 편 더 있다. 일주일 내내 마감의 연속”이라며 웃었다.

일본에서 시마 사장의 인기는 실존인물들은 누릴 수 없는 수준이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주요 신문은 2008년 4월 1일 만화 속 주인공 시마 전무가 하쓰시바전산과 고요전기가 합병해 탄생한 하쓰시바·고요홀딩스의 사장에 올랐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히로카네 씨의 고향이자 시마 사장의 고향인 일본 남부지역의 야마구치(山口) 현 이와쿠니(巖國) 시에서는 시마 사장 취임 축하 플래카드를 걸기도 했다.

―29년째 연재하고 있는 시마 시리즈의 인기 비결은 무엇인가.

“대개 코믹만화는 엔터테인먼트가 100%지만 주인공이 신입사원에서 과장 부장 임원을 거쳐 사장이 되는 시마 시리즈는 재미와 정보가 절반씩 들어가 있다. 이 때문에 취재도 꼼꼼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토리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신문과 서적 잡지 TV를 닥치는 대로 본다. 특히 전기전자 기업 관련 정보를 빠짐없이 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가 하도 잘나가서 ‘삼성의 비밀’이라는 책도 유심히 읽었다.”

그의 작업실은 도서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책과 사진 파일이 꽂혀 있다. 그는 “만화의 배경을 사실적으로 그려 넣기 위해 외국에 직접 가 풍경사진을 잔뜩 찍어온다”며 “중국 편을 쓸 때는 상하이에만 7, 8회 다녀왔다”고 했다.

―시마 사장이 취임 이후 상당히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외국에 나갈 때마다 ‘이제 일본은 끝인가’라는 불안감이 떠나질 않는다. 독자들에게 ‘큰일났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

―독자 중에는 시마 씨가 사장이 되더니 구조조정만 하려 하고 과장 시절 가지고 있던 신념과 소신이 없어졌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관련 기업이 30만 개나 되는 거대 그룹의 사장이 내려야 할 결단과 한 부서의 일만 생각하면 되는 과장과 부장의 판단은 다를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 안 하고 방대한 계열사도 그대로 유지하면서 회사가 잘되는 모습을 ‘만화처럼’ 그릴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세계는 희생 없이 얻을 수 있는 게 없지 않나.”

―2011 회계연도에 사상 최악의 적자를 낸 소니와 파나소닉 샤프 등 일본 전자기업이 시마 사장을 배워야 한다는 뜻인가.

“일본 전자기업들은 지금까지 TV 판매에 과도하게 의존해 온 측면이 있다. 세계에 TV를 가장 많이 판다는 교만함에 빠져 안주해 왔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경쟁자가 뛰어들면서 판이 바뀌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이미 한국 제품이 시장을 차지해 버렸다. 한국 제품의 수준은 일본과 대등해진 반면 가격경쟁력이나 디자인은 오히려 앞선다. 내수시장이 너무 작다는 걸 안 한국 기업들은 일찌감치 외국으로 나가 현지화에 성공했다.”

히로카네 씨는 한국이 미국 유럽연합(EU) 등 거대 경제권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사례를 들면서 “한국은 정치적으로도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농업에 부담이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니까 정치가 결단을 내리지 않았나”라며 “아무것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일본 정치를 보면 한국이 부럽다”고 말했다.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일본 제조업은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하지만 일본이 한국에 자리를 내준 것처럼 한국 역시 중국에 밀려날 수밖에 없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지금 일본이 겪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 고령자 복지를 위한 재정 부담 증가 등 제반 문제들은 조만간 한국도 똑같이 겪을 수밖에 없다. 한국은 일본 사례를 꼼꼼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시마 시리즈가 ‘단카이(團塊) 세대에 대한 열렬한 응원가’라는 평가처럼 시마 사장은 ‘단카이 세대’의 표상이다(단카이 세대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49년에 태어난 전후 베이비부머 세대로 일본 전체 인구의 5%가 넘는 680만 명에 이른다).

“전후 일본 사회는 단카이 세대의 인생 사이클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들이 20, 30대인 1960, 70년대에 일본은 고도성장을 이뤘고, 경제적 안정기인 40대(1980년대)에 버블이 끼기 시작해 50대(1990년대)가 되자 일본은 장기 불황이라는 병에 걸렸다. 단카이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는 지금 일본은 경제발전의 정점을 지나 ‘하산’ 중이라고 할 수 있다.”

1947년생으로 자신도 단카이 세대인 히로카네 씨는 앞으로 단카이 세대의 사회적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많은 혜택을 받은 만큼 이제는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카이 세대는 인구가 많다 보니 일본 사회에서 영향력도 컸다. 시대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은 ‘혜택 받은 세대’다. 그러나 단카이 세대가 너무 많이 누리다 보니 후세대들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봤다. 단카이 세대는 이제 적극적으로 소비를 해줘야 한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재산의 70%를 60대 안에 쓰자는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마 사장도 64세이니 조만간 은퇴할 때가 됐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나.

“나도 모른다. 출판사가 연재 중단을 결정하면 하루아침에 암에 걸려서 죽을 수도 있고….(웃음) 아마 시마 사장은 조만간 다른 일본 기업처럼 경영 일선에서 손을 떼고 회장에 앉게 될 것이다. 지금 시마 사장은 일본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 시마 시리즈 ::

1983년부터 일본 만화주간지 ‘모닝’에 연재되고 있는 기업만화. 주인공 시마 고사쿠(島耕作)가 일본 전자회사인 하쓰시바전산(파나소닉이 모델)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사장에 오르는 과정을 그렸다. 만화 속에서 한국 기업인 삼성과 LG가 각각 섬상과 PG로 소개되고 있다. 시마 과장, 부장, 임원, 상무, 전무, 사장편 등 총 69권의 단행본이 출판됐으며 3900만 권이 팔렸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시마 시리즈#일본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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