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유통 일괄형 의류’ SPA효과, 명동이 춤추고 항공사가 웃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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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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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 이민희 씨(31)는 올봄 옷 쇼핑을 위해 서울 중구 명동 중앙로를 찾았다. 유니클로, 자라, H&M 같은 해외 제조유통일괄형(SPA) 패션 브랜드뿐 아니라 토종 SPA인 에잇세컨즈, 미쏘 등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이 씨는 “5년 전만 해도 명동 중앙로는 대학생들이나 관광객이 다니는 곳으로만 생각했고, 백화점에서 주로 옷을 샀다”며 “요즘은 명동 길거리가 쇼핑 1번지가 됐다”고 말했다. 》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명동에 들어선 유니클로의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 당일 매출이 약 13억 원을 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같은 SPA 브랜드는 주변 상가 임대료도 함께 높이며 길거리 상권을 쇼핑의 중심지로 바꿔놓고 있다. 유니클로 제공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명동에 들어선 유니클로의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 당일 매출이 약 13억 원을 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같은 SPA 브랜드는 주변 상가 임대료도 함께 높이며 길거리 상권을 쇼핑의 중심지로 바꿔놓고 있다. 유니클로 제공
2005년 9월 유니클로가 롯데백화점 서울 영등포점에 첫 점포를 열면서 본격화된 SPA 열풍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서울 등 주요 도시의 상권지도를 바꾸는 것은 물론이고 항공물류 등 산업 전 분야에 걸쳐 다양한 파장을 던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패션의류업체들은 ‘동대문 시장’을 비장의 카드로 삼아 글로벌 SPA 브랜드들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 SPA가 오면 상권이 뜬다

SPA 열풍으로 가장 들썩이는 곳은 상가 부동산 시장이다. 중심 상권에 660∼3300m² 규모의 대형 매장을 찾는 것이 글로벌 SPA 브랜드들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H&M 정해진 실장은 “과거에는 ‘쇼핑=백화점’이었다”면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죽어있던 길거리 상권이 SPA 브랜드들 덕에 되살아났다”고 말했다.

글로벌 부동산컨설팅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코리아에 따르면 서울 중구 명동,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등의 주요 상권의 임대료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서울 명동 메인스트리트 내 상가의 3.3m²(1평)당 1층 전용면적 임대료는 2008년 4분기(10∼12월) 약 139만9000원에서 지난해 4분기 208만4000원으로 올랐다.

SPA 브랜드는 또 복합쇼핑몰과 만나 시너지를 내며 수도권과 지방에 쇼핑몰 붐을 일으키고 있다. 유니클로는 지난달 경남 창원시 더시티세븐에 입점했고, 2013년 오픈 예정인 울산 업스퀘어 쇼핑몰 1, 2층에 들어설 예정이다. 내년에 경기 고양시 일산에 문을 여는 원마운트도 자라의 모회사인 인디텍스 그룹의 5개 브랜드와 H&M을 입점시키기로 했다. 쇼핑몰 관계자는 “일단 대형 SPA 브랜드를 유치하면 유동인구를 끌어올 수 있어 다른 매장을 채우기 좋다”고 말했다.

항공과 해운 등 물류업계에서도 SPA 브랜드가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SPA 브랜드는 트렌드의 변화를 빠르게 포착해 생산에 반영하는 ‘반응생산’을 생명으로 하다 보니 물류를 핵심 경쟁력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표적인 항공 물류인 반도체, 휴대전화의 물동량이 줄어들어 고민했는데 SPA 브랜드들이 그 빈틈을 채워줬다”고 말했다.

○ “비장의 무기는 동대문”


권오향 제일모직 상무는 2004년부터 글로벌 SPA 브랜드에 대응할 토종 SPA를 고민했다. 상품 기획부터 생산 및 제조, 유통망 확충을 동시에 준비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 그때그때 유행에 맞춰 더욱 다양한 옷을 생산하기 위해 권 상무가 눈여겨본 곳은 서울 동대문 시장. 권 상무는 “동대문은 ‘원조 SPA’나 다름없다”며 “옷 소재와 부자재, 디자이너, 제조시설이 한 곳에 있어 하루만에도 기획에서 생산까지 끝내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무명 디자이너의 터전’으로 불리는 동대문은 3만여 개의 크고 작은 옷가게가 모여 매주 신상품을 내놓을 정도로 속도와 유행이 생명이다. 에잇세컨즈는 동대문에서 ‘잘나가는’ 디자이너 브랜드 4개를 ‘숍인숍’ 형태로 매장에 들였다.

글로벌 SPA의 공세로 벼랑 끝에 몰린 국내 패션업체들은 비장의 무기로 ‘메이드 인 동대문’의 힘을 빌리기 시작했다. 스파이시컬러는 제품의 30%가량을 동대문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다양한 패턴을 가공해 제작한다. 에잇세컨즈는 동대문 제품을 향후 20%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동대문 시장이 갖춰놓은 제조시설을 빌리는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다.

동대문 디자이너들도 국내 SPA 브랜드와의 협업에 적극적이다. 무엇보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는 판로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최근 에잇세컨즈 매장에 자신의 제품을 선보인 ‘더스타일’의 오유정 대표는 “소수 인력에만 의존하던 동대문의 제작 및 판매 방식을 시스템화할 수 있는 기회”라며 “노골적으로 동대문 디자인을 베끼고 있는 중국 시장도 견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파리=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


상품 기획을 비롯해 디자인 생산 제조 유통 판매 등의 전 과정을 자체적으로 하는 의류 전문 소매 브랜드. 대량 생산으로 제조원가를 낮추고 유통 단계를 축소해 저렴한 가격에 트렌디한 상품을 선보이는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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