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탄생 250주년…茶山의 향기]<2>다산이 말하는 국가 경영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다산 “성기호설로 한류 날개 달고… 손상익하로 고루 잘살게 하라”

빈부격차 커지고 청나라 정보 넘쳐나던 19세기 초 조선시대를 보며… 사회 양극화 심화되고 목소리 다양해진 21세기 대한민국의 길을 찾다
빈부격차 커지고 청나라 정보 넘쳐나던 19세기 초 조선시대를 보며… 사회 양극화 심화되고 목소리 다양해진 21세기 대한민국의 길을 찾다
《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이 살았던 시기는 조선 르네상스의 끝자락에 속한다. 양란(임진왜란 병자호란) 후 큰 전쟁 없이 청나라와는 사대, 일본과는 교린 관계를 맺으며 발전하던 시기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양반이 급증했고 빈부 격차가 심화됐으며 민생은 어려워졌다. 중국으로부터는 수많은 저작물이 쏟아져 들어와 온갖 정보가 넘쳐났다. 21세기에 다산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학자들은 “다산이 활동했던 시기와 지금 한국의 모습이 정치·경제적인 면에서 흡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해외의 기술을 모방하기보다 우리만의 것으로 발전시키는 창의력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도 같다. 다산을 연구해온 종교철학자 금장태 서울대 명예교수는 “다산 시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산의 사상을 반드시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
○“최고 권력자 측근부터 법 지켜라”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둔 한국에 다산이 던져주는 화두는 ‘분배’와 ‘법치’다.

다산은 ‘전론(田論)’에 “임금과 수령의 역할은 백성 모두가 골고루 잘살게 하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부자의 것을 덜어내 가난한 자에게 보태 주어(손상익하·損上益下) 그 살림을 군 일대)군수와 전직 연천현감의 죄를 고발한 상소문에서 “이들은 (왕이) 총애하고 비호함을 믿고 이와 같이 방자했다. 법의 적용은 마땅히 왕의 가까운 신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장태 교수는 “다산이 살던 당시 양반은 법을 ‘이용하려고’ 했고 백성은 법을 ‘피해 가려고’ 했다. 다산은 특히 왕의 측근부터 국법을 지켜야 백성들도 지킨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목민관의 공정한 임용과 평가와도 연결된다. 김문식 교수는 “다산은 배경이나 연줄이 아니라 실무능력을 기반으로 공정한 인사고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걸 하게 하라”

21세기 한국 경제를 이끌어갈 신동력을 찾는 이들은 다산의 ‘성기호설(性嗜好說)’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기호설은 인간이 기호, 즉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태어나 이를 추구한다는 뜻을 담았다. 전성호 교수는 “다산의 성기호설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표방한 사상으로 현대경제학의 관점에서 기호는 ‘인센티브’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즉, 일에 대한 성과가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희망이 있어야 동기 부여가 되며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성기호설을 바탕으로 “모든 인간은 좋아하는 것을 해야 최고의 창의성과 성과를 낼 수 있다”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케이팝(K-pop·한국 대중가요) 열풍도 아이돌 가수들이 좋아하는 노래와 춤을 추구한 결과”라고 말했다.

정보사회에 접어들면서 많이 연구되는 분야 중 하나가 다산의 ‘지식경영’이다.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다산의 지식경영법은 오늘날에도 효율적인 공부법이자 프로젝트 수행법이며 기업경영 및 국가행정에도 유용하다”고 말했다.

18세기 조선에는 청나라의 백과전서가 쏟아져 들어왔다. 널려 있는 정보를 수집하고 배열해 체계적이고 유용한 지식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당시 지식인들의 주요 임무였으며 다산은 수많은 정보를 필요에 따라 정리해내는 뛰어난 지식경영가였다. 그는 500권이 넘는 저술을 남겼는데 대부분 제자들과 함께 작업한 것이다. 정보사회에서 주목받는 개념인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작업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정 교수는 “명확한 목표와 체계적인 단계, 효율적인 작업, 조직적인 역할 분담이 이뤄졌기에 엄청난 양의 작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며 “무엇보다 ‘위국애민(爲國愛民)’이라는 목표가 분명했다는 점이 다산 작업의 뛰어난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중심은 잡되, 편견 없이 받아들여라”

정보사회의 심각한 폐해 중 한 단면으로 ‘의견의 양극화’가 꼽힌다. 다산은 중용의 관점에서 중심을 잡고 양극단의 주장을 종합한 지식인이었다. 이러한 면모는 ‘맹자’를 주해한 ‘맹자요의(孟子要義)’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한 ‘기예론(技藝論)’에 잘 드러난다.

‘맹자요의’는 유교 전통에서 이단으로 배척받아온 양주와 묵적의 견해까지도 수용할 수 있는 포괄적 자세를, ‘기예론’은 도움이 되면 무엇이든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태도를 보여준다.

“성인의 도는 구애받지 않고 막히지 않고 의로움에 따른다. 그러므로 시중(時中)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양주와 묵적의 의로움이 함께 존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맹자요의)

“중국의 법식과 제도는 나날이 증가하는데 우리는 막연하게 서로 묻지도 않고 오직 예전의 것에 안주하고 있다.”(기예론)

다산은 다른 사람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관점에서 재해석했다. 젊은 시절 천주교 신앙에 빠져들었지만 거기에 멈추지 않고 천주교의 가치관을 적용해 유교경전을 새롭게 해석해냈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