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알 한재선 대표(왼쪽). 엔써즈 김길연 대표(오른쪽).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제이슨, 개발자가 면접 보러 1층에 와 있어요.”
“그래요 아지라엘, 곧 내려갈게요.”
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넥스알 대표이사 집무실. 이 회사 한재선(미국명 제이슨) 대표와 여직원은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대표는 그렇다 쳐도 부하직원도 상대에게 직함이나 그 흔한 ‘님’자조차 붙이지 않았다. 마치 동호회 모임에서 회원들이 서로 별명을 부르며 편하게 얘기하는 듯했다.
넥스알은 지난해 1월 KT에 인수된 클라우드 컴퓨팅 전문 벤처기업이다. 그러나 사무실 분위기는 대기업 자회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회사 문패에 찍힌 ‘KT’ 로고가 아니면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직원들은 오전 7∼10시에 아무 때나 나와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한 대표는 “벤처는 무엇보다 수평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가로막는 한국식 호칭을 없앴다”며 “만약 KT가 우릴 인수한 뒤 경영권을 행사했더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폰 쇼크’를 계기로 스마트 혁명이 본격화하면서 기술력 있는 벤처기업을 인수합병(M&A)해 경쟁력을 키우려는 정보기술(IT) 대기업이 늘고 있다. 대기업은 혁신적 아이디어를 흡수하고, 벤처기업은 열악한 자금 및 판로(販路)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서로 ‘윈윈’할 수 있다.
그동안 국내 대기업들은 벤처기업을 인수해 인력과 기술만 빼먹는 ‘먹튀’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렇지 않더라도 벤처기업을 인수한 뒤 마치 ‘점령군’처럼 행세하면서 해당 기업의 잠재력을 갉아먹기도 한다.
그러나 넥스알은 KT에 지분 65%(인수가 46억 원)를 넘기면서 ‘독립 경영’을 철저히 보장받고 한 대표를 비롯한 임직원 대부분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핵심인력 이탈이 거의 없었던 셈이다. ▼ 벤처 자유로움에 기술개발 편의성 더해져 ▼
KAIST 전산학 석·박사 출신인 한 대표는 인사부터 재무, 연구개발에 이르기까지 경영 전반에 걸쳐 KT 지시를 받지 않는다.
‘벤처 특유의 창의성과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대기업이 경영에 간섭해선 안 된다’는 인식을 양측이 공유했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지난해 KT가 인수 제안을 해왔을 때 ‘별도 법인으로 분리돼 독립경영을 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며 “벤처 마인드가 없는 KT가 직접 운영하면 결국 핵심인력들이 떠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개발자들이 선호하는 자유로운 조직문화에 KT의 재정지원까지 뒷받침되면서 넥스알에는 인재가 몰리고 있다. 17명이던 엔지니어는
최근 44명으로 3배 가까이로 늘었다. 또 해외 유수 통신업체들과 거래하고 있는 KT의 고객망을 바탕으로 해외시장 진출에 십분
활용하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은 KT로서도 천군만마를 얻었다. 클라우드 컴퓨팅을 하려면
대용량 데이터를 여러 서버에서 분산 처리할 수 있는 ‘빅 데이터’ 기술이 필수인데 넥스알은 2007년부터 이 분야에 진출해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동영상 검색 벤처기업으로 지난달 KT에 인수된 엔써즈도 성공 모델이다. 이 회사의 김길연
대표는 “전체 벤처의 2∼3%만이 코스닥 상장에 성공하는데, 그나마 평균 12년이 걸린다”며 “급변하는 환경에서 회사규모를 빨리
키워 해외로 진출하기 위해 M&A를 택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회사를 넘기는 대가로 200억 원을 받았지만 여전히
경영을 맡고 있다.
자연히 벤처기업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60여 명의 직원이 직책이 따로 없다. 프로젝트에 따라 신참이라도 팀장 역할을 맡을 수 있다.
KT는 엔써즈가 보유한 독특한 동영상 검색기술이 자사의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에 꼭 필요하다고 보고 벤처업계 M&A에서는
이례적으로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자사의 서버 등 장비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엔써즈 관계자는 “인수당한 회사라는
느낌이 전혀 없다”며 “오히려 KT의 장비를 사용할 수 있어 개발의 편의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