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밀어붙이기 딜레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4일 03시 00분


野 반대… 삼척 주민갈등정부 “총-대선 악재 될라”

올해 3월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 이후 국내의 원전 반대 여론이 확산된 가운데 정부가 전격적으로 원전 후보지 두 곳(경북 영덕, 강원 삼척)을 선정하자 야당과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본보 23일자 A12면 새 원전 후보지 삼척-영덕 2곳 선정

9·15정전사태로 장기적인 전력난을 우려한 정부는 이를 계기로 원전 확대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시민단체와 야당이 안전을 이유로 이를 정치 쟁점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현 정부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내년도 총선 및 대선을 앞둔 정부로서는 ‘원전 딜레마’에 빠졌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23일 원전 후보지 선정 브리핑에서 “경북 영덕과 강원 삼척 주민의 원전에 대한 찬반 설문조사 결과 지지도는 평균 50% 수준”이라며 “삼척은 절반에 약간 못 미쳤다”고 밝혔다.

후보지 선정의 평가기준인 주민수용성을 판단하는 여론조사는 10월 말부터 11월 초에 3개 여론조사기관이 500명씩 영월과 삼척 모두 각각 15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을 통해 이뤄졌다. 당초 6월 말 발표를 위해 실시된 3월 초 여론조사에서 찬성 여론이 약 75%에 이르렀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지도가 크게 떨어진 것이다. 이는 3월 12일 일어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 극렬 반발 계속땐 백지화될 수도 ▼

김영평 부지선정위원장(고려대 명예교수)은 “당초 찬성한 약 75% 중 50%는 지지를 유지했고 나머지 25%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유보적 입장을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와 한수원은 지난달 초에 이미 부지선정위원회로부터 최종 결과를 통보받고서도 발표시기를 저울질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측은 9·15정전사태를 겪은 국민들이 원전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정부 방침에 호응해 줄 것으로 판단해 전력수요가 많은 12월에 전격 발표한 것이다.

○ 야당과 환경단체는 정치 쟁점화

후보지 선정 이후 정치권과 시민환경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원전 후보지 선정 철회를 요구한 민주통합당의 원혜영 공동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가진 환경단체 관계자들과의 면담에서 “원전을 확대하는 첫 조치인 만큼 단호하고도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이시재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민주통합당이 좀 더 구체적으로 탈(脫)원전 로드맵을 만들어 선거강령으로 내놓아야 한다”고 요청했다.

국회 지식경제위원장인 민주통합당 김영환 의원도 “원전 정책은 현 정부에서 결정지을 일이 아니다”라며 “내년 대통령 선거 과정을 통해 더욱 밀도 있는 논의를 거쳐 다음 정권에서 책임지고 끌어나갈 문제”라고 주장했다.

후보지로 선정된 영덕은 대체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삼척은 찬반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환경 종교 시민단체가 연대한 ‘삼척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는 후보지 선정 철회를 촉구하며 김대수 삼척시장에 대한 주민 소환도 불사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원전 유치에 적극 나섰던 삼척시 측은 “원전 건설로 약 24조 원의 경제적 효과와 하루 평균 3000여 명의 근로자 투입, 1만여 명의 인구 증가가 기대된다”며 후보지 선정을 반겼다.

최근 여름과 겨울철마다 전력수요 관리에 비상이 걸린 정부로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원전 건설은 장기적으로 국내 전력수급 안정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선거철을 앞두고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 역시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환경단체의 극렬한 반발이 이어지면 후보지 백지화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1970년대 박정희 정부 시절 지정된 원전 후보지 11곳 가운데 김대중 정부 1년차인 1998년 말에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의견을 수용해 전남(6곳) 경북(2곳) 강원(1곳) 등 9개 지역을 원전 후보지역에서 제외한 적도 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삼척=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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