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부터 자산 1조 원이 넘는 저축은행은 ‘저축은행 수준’에 맞지 않았죠. 서울에 있는 대형 저축은행도 자산 7000억 원이 적당하다고 봅니다. 저축은행들이 욕심만 앞세워 잘 알지도 못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무작정 뛰어든 게 화를 부른 겁니다.” 이정일 대명저축은행장(73)은 상호신용금고법(현 상호저축은행법)이 제정된 1972년 대명상호신용금고로 첫 영업을 시작한 이래 39년째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지켜온 업계 최장수 CEO다. 출범 당시 300여 개에 이르던 상호신용금고 CEO 중 유일하게 현역으로 남아 있다. 》
이정일 대명저축은행장은 “우리 직원들에게 ‘우리의 능력에 맞게, 분수에 맞게 경영하라’고 늘 강조한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중앙회 제공
지난달 29일 충북 제천시 본점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최근의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와 관련해 “금융업은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는데, 너무 과했다”고 말했다.
○ 지역밀착 영업으로 생존
제천 본점과 충주 지점을 둔 대명저축은행은 6월 말 기준 자산 1200억 원의 소형 저축은행이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17.94%, 고정이하여신비율 6.46%로 재무건전성이 우수하다. 영업을 시작한 이후 외환위기와 최근 저축은행의 PF 부실사태를 겪었지만 단 한 차례의 적자도 내지 않았다.
2000년대 초중반 상당수 저축은행이 앞다퉈 PF사업에 치중할 때 이 저축은행장은 PF사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당시 PF사업은 연 20%에 가까운 고수익을 냈지만 생소한 분야인 데다 연고가 없는 다른 지역 사업장에 예금자들의 돈을 무작정 맡길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 대신 규모는 작지만 제천지역 중소기업과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영업에 집중했다. 그는 “나 역시 제천 토박이로 이 동네에서 스무 살 넘은 사람은 누군지 다 알 정도”라며 “지역 사람은 물론이고 기업들까지 꿰뚫고 대출해 주니 부실해질 가능성이 매우 적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국내 경기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신용대출에 집중하고 있다. 실제 작년 말 대비 올해 상반기 소액신용대출 잔액도 3배 가까이로 늘었다. 대출 규모가 커 부실이 나면 충당금 부담이 큰 담보대출 대신 신용대출을 돌파구로 삼은 것이다. 그는 “직원들도 이 지역 사람이다 보니 고객 집안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며 “신용등급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알다 보니 신용대출에서도 강점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저축은행 덩치만 키운 게 잘못
그는 최근 저축은행 사태에 대해 “저축은행들이 각자 지역을 벗어나 무리하게 덩치를 키우다 보니 자연스레 부실로 이어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형 저축은행들은 다른 저축은행을 인수하면서 규모를 늘렸다. 2000만 원에서 5000만 원으로 늘어난 예금자보호한도도 저축은행의 자산을 늘리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그는 “수신금리를 조금만 높여도 예금이 몰려들기 마련”이라며 “수신을 끌어다 수익률 높은 PF에 몰아넣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자 후순위채를 발행해 자본금을 늘린 행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미뤄온 금융당국에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외환위기 여파로 부실해진 상호신용금고가 대거 무너졌는데 그때 제대로 정리했으면 지금처럼 서민에게까지 피해가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당시 대형 저축은행에 부실 저축은행을 떠넘기면서 다른 권역의 지점 개설까지 허용해준 것은 부실의 씨앗을 심은 격”이라고 주장했다. 이 저축은행장은 저축은행이 서민금융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저축은행 업계의 자구노력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저축은행 스스로 몸집을 줄여야만 중소기업과 서민을 위한 대출을 취급할 여력이 생길 것”이라고도 했다. 이어 “최근 급격히 늘어난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와 경쟁하려면 저축은행에도 비과세 상품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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