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판매 확대만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입니다.”(2009년 2월)
“(현대차 임직원에게) 차 잘 만들라고 당부할 것입니다.”(2011년 9월)
약 2년 반의 시차를 두고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유럽 출장길에 한 말이다. 2009년 2월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는 시점이었다. 지금은 유럽발(發) 금융위기의 먹구름이 가시지 않고 있다. 어려운 경영환경에 직면한 것은 비슷하지만 정 회장이 내린 해법은 다르다. 그는 2009년에는 ‘공격경영’을 내세웠으나 20일 유럽 출장을 떠나면서 ‘품질’을 강조했다.
2009년 정 회장이 던진 공격경영의 승부수는 제대로 적중했다. 현대차그룹은 올 상반기에 사상 처음으로 판매량 기준(상반기 319만 대)으로 세계 4위 자동차업체로 올라섰다. 또 다른 위기가 도사리고 있는 올 하반기에 정 회장은 ‘품질경영’이란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 반복된 위기, 다른 대응
2008년부터 시작된 금융위기로 세계 자동차 판매는 위축됐고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는 휘청거렸다. 당시 대부분의 자동차업체가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것과 달리 현대차는 공격적인 마케팅에 주력했다. 현대차의 미국 판매 확대 기폭점이 된 ‘어슈어런스 프로그램’도 이 같은 배경에서 태어났다. 이 프로그램은 차를 산 고객이 실직했을 때 차를 되사주는 것으로 미국 고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또 정 회장은 “신흥시장 공략을 강화하라”고 독려했고 실제로 인도 중국 등 신흥시장은 현대차 도약의 무대가 됐다.
투자도 계속했다. 사내 안팎에서 무모한 투자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2008년 러시아 공장을 짓기로 한 계획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2010년 완공된 러시아 공장에서 생산된 ‘쏠라리스’는 올해 러시아 수입차 시장 판매 1위를 기록했다. 미국 중국 체코 등 세계 각지에서 생산된 차량은 도요타 리콜 사태로 인한 공백을 빠르게 파고들었다.
이처럼 공격경영으로 위기를 돌파한 정 회장은 올해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사장단회의에서 “해외 딜러들을 중심으로 물량 확대 요구가 있어 생산설비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자 정 회장의 “양적으로 벌이기보다는 (질을) 다져야 할 시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이제는 제품의 질을 높이고, 브랜드 파워를 올리고, 그에 맞는 새로운 고급차를 내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 생존→도약→ 역량강화
이는 현대차가 판매량 측면에서는 공고한 위치를 확보했기 때문에 앞으로 물량 경쟁이 아닌 질적 경쟁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실제로 2009년 신년사에서 ‘위기에서의 생존’을, 2010년에는 ‘글로벌 선두업체 도약’을 화두로 제시했던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는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역량강화’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정 회장은 오래전부터 품질을 강조해 왔지만 올해는 의미가 다르다. 그는 6월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금까지 ‘품질 안정화’를 위해 임직원 모두가 애써왔지만 앞으로는 ‘품질 고급화’에 주력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모던 프리미엄’을 강조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또 품질 관리에 실패해 쓴맛을 본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1분기(1∼3월) 실적발표회에서도 이원희 부사장은 “증설 계획은 없다. 올해 목표는 질적 성장”이라며 “도요타 리콜 사태에서 보듯 지나친 확장은 품질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 측은 “이번 유럽 출장은 앞으로 도래할 위기의 핵심 지역인 유럽을 직접 찾아 문제될 부분은 미리 점검하고 품질 강화를 통해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밝혔다. 이날 출장길에 오른 정 회장은 현대자동차 체코 공장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유럽판매 법인을 방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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