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대표적 핸드백인 ‘버킨백’은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당장 사려고 해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인기 있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도 1, 2년 뒤에나 제품을 받을 수 있다. 에르메스의 또 다른 베스트셀러 ‘켈리백’ 역시 찾는 이가 많아 평균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국내 명품업계 관계자들은 1일 버킨백과 켈리백의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기다리는 사람이 전국적으로 1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에르메스 핸드백이 이 같은 인기를 누릴 수 있는 비결은 뭘까.
○ 켈리백, 버킨백이 뭐기에
최근 버킨백과 켈리백의 대기자가 늘어난 것은 명품의 대중화와 무관치 않다고 명품업계는 분석했다. 명품이 흔해지자 차별화된 브랜드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명품의 종착역’으로 불리는 초고가 버킨백과 켈리백에 관심을 쏟게 됐다는 것이다.
버킨백의 이름은 영국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유명한 가수 겸 영화배우 제인 버킨에서 유래했다. 1984년 밀짚 소재 가방을 든 버킨을 우연히 비행기에서 만난 장루이 뒤마 에르메스 5대 회장이 그를 위해 검은색 가죽가방을 제작해준 데서 비롯됐다. 가격은 송아지가죽 등 ‘대중적’인 소재의 모델은 800만 원대, 타조가죽은 2500만∼4000만 원대, 최고가인 악어가죽은 5000만 원대 이상이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는 버클 부위에 다이아몬드를 박은 1억 원대 모델이 판매된 적이 있다.
켈리백은 1837년 에르메스 창립 당시부터 선보였던 승마 안장 보관용 가방이 원형이다. 안장을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가방을 1935년 여성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작은 크기의 모델로 제작했고 이것이 현재까지 판매되는 켈리백의 원형이 됐다. 1956년 영화배우 출신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임신으로 불룩해진 배를 가리기 위해 커다란 사이즈의 빨간색 악어가죽 소재 백을 든 게 잡지 표지에 실려 화제가 되면서 그의 이름을 딴 애칭을 갖게 됐다. 켈리백과 버킨백은 모두 원래 디자인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어깨에 멜 수 있도록 숄더백으로 제작하거나 미니 사이즈로 나오는 등 다양한 버전으로 매년 새롭게 선보이고 있다.
인기가 높은 버킨백과 켈리백도 색상과 크기에 따라 ‘배달시간’이 달라진다. 최근 버킨백을 구입한 40대 주부 한모 씨는 “‘버킨 35(cm)’ 검은색 모델처럼 수요가 가장 많은 모델에 집착하지 않으면 몇 주 만에도 가방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주로 ‘무난한’ 무채색 계열을 찾는 고객이 많은 편이라고 에르메스 매장 관계자는 전했다.
○ ‘기다림 마케팅’의 힘
에르메스코리아는 “일부 가방의 공급이 달리는 이유는 장인의 ‘손끝 감각’을 살리기 위해 수요에 맞춰 인기 품목만 생산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모델을 제작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3년간의 자체 가죽장인학교 수업과 2년의 수련기간을 거쳐 현장에 투입되는 장인들은 한 달에 평균 4개의 가방을 만든다. 공정별로 분업하지 않고 한 사람이 한 개의 제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한다. 에르메스코리아 관계자는 “5년 전만 해도 1000명 수준이던 장인이 현재 3500명으로 증가했지만 수요가 그만큼 늘어 고객에게 제품이 전달되는 기간은 크게 줄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에르메스의 대기자 명단 운영 방식이 사실은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의 광고사진 전문 미용사 마이클 토넬로 씨는 지난해 국내에 출간된 책 ‘에르메스 길들이기’에서 “(나는) 매장직원에게 엄청난 부자라는 인상을 풍겨 기다리지 않고 가방을 구할 수 있었다”며 “대기자 명단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에르메스는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최근 언론에 다큐멘터리 ‘에르메스의 손’을 공개했다. 여기엔 에르메스의 가방을 만드는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에르메스 장인들은 “한 달에 제품을 딱 한 개만 만들 때도 있고 최종적으로 제품을 검수한 결과 품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과감히 폐기한다”고 전했다. ‘생산의 효율성’보다는 ‘명품으로서의 완성도’를 존중한다는 의미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기다림 마케팅’은 쉽게 구하지 못해 더 간절히 원하게 하는 인간 본성을 자극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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