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속담에 한 번 만나면 아는 사람, 두 번 만나면 친구, 세 번 만나면 친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 번 만나 계약까지 맺었으니 이제 한국과 우즈베키스탄도 친척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맞아 도시 곳곳에 환영 플래카드가 내걸린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이 대통령이 양국의 우호관계를 다지던 23일 한쪽에선 ‘경제 한류’의 맥도 뚫렸다. 한국거래소가 우즈베키스탄 증권시장 현대화 프로젝트를 위해 정보기술(IT)시스템을 수출하기로 본계약을 맺은 것. 계약 직후 김봉수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현지 속담으로 두 나라의 친분을 나타냈다.
우즈베키스탄 증시는 1994년 설립됐지만 상장 종목이 90여 개에 불과하다. 일평균 거래대금은 16만 달러에 머무르고 있다. 주식을 사고팔 때 증권사를 직접 방문해야 할 정도로 제대로 된 전산시스템도 없다. ‘증시 살리기’에 나선 우즈베키스탄은 한국거래소에 손을 내밀었다. 한국거래소는 이번 계약에 따라 매매체결, 시장감시시스템 등 일체의 IT시스템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증시 현대화를 위한 법률자문과 종합 컨설팅을 담당하게 됐다.
이날 타슈켄트 국유재산위원회(SPC·the State Property Committee) 청사에서 현지 취재진 수십 명이 몰린 가운데 계약서에 서명을 마친 압두 카키모프 국유재산위원장은 “국내총생산(GDP)이 매년 8% 이상 성장하는 우즈베키스탄에 이미 고속 성장을 이룬 한국은 최고의 파트너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양국의 협력 속에 우즈베키스탄 증시가 10배, 아니 곧 1000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 “마음 얻어라” 수년간 컨설팅
우즈베키스탄은 한국거래소가 진출한 6번째 나라다. 2006년 말레이시아거래소의 채권 매매 및 감리시스템을 시작으로 2009년 베트남 증시 차세대 프로젝트, 지난해 12월 필리핀거래소의 시장감시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적을 쌓았다.
단순한 IT시스템뿐만 아니라 ‘한국형 거래소’를 통째로 수출하는 방식도 시도하고 있다. 올 1월 한국거래소가 지분 49%를 출자하고 한국인이 부이사장을 맡아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라오스거래소가 가동을 시작했다. 한국거래소가 지분 45%를 보유한 캄보디아거래소도 올 11월 개장을 앞두고 있다.
거래소를 수출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현지 정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수년간 컨설팅을 해주고, 한국으로 초청해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기본이다. 캄보디아거래소의 경우 2006년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지만 전문인력 양성에만 4년이 걸렸다. 복잡한 현지 행정 절차도 걸림돌이었다. 한국거래소 신평호 상무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사회주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외교부 등 12개 부처와 동시에 협의를 해야 했다”고 소개했다.
세계 증권시장의 합병 경쟁도 우리에겐 위협적이다. 뉴욕거래소와 독일거래소 간 합병이 추진되고, 아시아권에서는 싱가포르와 호주거래소 간 합병이 논의되고 있다. 글로벌 증시끼리 생존경쟁을 벌이는 셈이다. 중국은 자신들의 증시시스템을 수출하려고 “무료로 시스템을 깔아주겠다”며 물량공세에 나섰다. ○ 전 세계 잇는 ‘KRX 루트’ 꿈꾼다
한국거래소는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에서 영향력을 넓혀왔다. 이제는 동유럽과 아프리카에 눈을 돌리고 있다. 세계 증권거래소들의 합병 바람 속에 살아남으려면 ‘금융영토’를 넓히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선 증권시장의 토대를 마련하지 못한 신흥시장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한국거래소는 말레이시아 진출 직후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에 ‘러브콜’을 보낸 기억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우즈베키스탄과의 계약이 동유럽으로 진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협의를 진행하면서 아제르바이잔 등 동유럽 국가가 한국 증시시스템에 관심을 나타냈다. 한국거래소는 단순 컨설팅부터 거래소 자체를 수출하는 방안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들 국가와 협의하고 있다. 한편 한국거래소는 24일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현지 증권거래소에 컨설팅을 제공하는 내용의 MOU를 체결했다.
한국 거래소는 2006년 해외사업팀도 갖추지 못한 채 수출에 나섰지만 5년 만에 동남아, 중앙아시아, 동유럽, 아프리카, 남미를 잇는 ‘KRX(한국거래소) 루트’를 꿈꾸고 있다. 김 이사장은 “개발도상국들의 마음은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이 잘 안다. 게다가 증시시스템의 바탕인 IT에서 앞서는 만큼 앞으로 시장을 더 파고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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