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테니스장의 레슨 강사들이 다 제 영업라인이나 마찬가지죠. 아들 재균이 놈도 요새 계속 만루홈런 치는데 이제 아버지도 ‘마케팅 홈런’ 칠 수 있게 열심히 도우라고 해야죠.”
황정곤 산업은행 스포츠금융단장(51)은 테니스 선수 출신이다. 예전에는 테니스 실력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이제는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의 3루수 황재균 선수(24)의 아버지로 더 유명하다. 그는 1982년 산업은행에 입행해 20년간 선수와 감독 생활을 한 뒤 2002년부터 영업점에서 근무를 했고 이달 초 신설된 산업은행 스포츠금융단장을 맡았다. 지금까지 운동선수 출신 은행원은 많았지만 스포츠마케팅을 총괄하는 자리에까지 오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황정곤 산업은행 스포츠금융단장에게 테니스 라켓과 아들 황재균 선수의 사인볼은 그만의 영업 무기다. 황 단장은 “이제 테니스 라켓보다는 아들 사인볼이 더 잘 통한다”고 말
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황 단장은 중고교 시절 촉망받는 테니스 유망주였다. 전일본선수권대회에서 단복식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으며 테니스 명문인 건국대에 입학해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지냈다.
그는 영업점 근무에서도 ‘테니스’ 덕을 톡톡히 봤다. 처음 서울 압구정 지점에 배치되자마자 그는 고급 아파트 단지의 테니스장을 찾아갔다. 3년 동안 영업 얘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은 채 동호인들과 친분을 쌓아 나갔다. 실업팀 감독까지 지낸 황 단장의 ‘원포인트 레슨’에 동호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렇게 만들어낸 인연 덕분에 그는 사내 캠페인에서 ‘최다 적금 계좌 유치 상’까지 받았다. 인터뷰 도중 그는 접대 골프보다 어렵다는 접대 테니스의 요령도 살짝 알려줬다.
“짧은 공이 넘어오면 속으로 2박자를 세고 달려들면 간신히 넘길 수 있고 상대방이 치기 좋은 코스로 공이 날아가죠. 감독 시절 산업은행 총재들과도 많이 쳤는데 이형구 전 총재는 휴일마다 불러낼 정도로 테니스광이었고, 지금 강만수 회장님은 성격처럼 불같이 거침없는 스트로크가 일품입니다.”
이제 어엿한 인기 선수가 된 아들 황재균 선수도 황 단장의 숨은 영업 전략이다. 황 단장은 인기 스타가 된 아들 덕분에 남들이 하지 못한 영업도 수월하게 하고 있다는 것. 올해 초 황 단장이 서울 마포지점에서 근무할 당시 한 업체가 수천억 원대의 예금을 빼겠다고 해 지점에 비상이 걸렸다. 이 업체를 설득하기 위해 많은 직원이 찾아갔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황 단장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회사를 직접 찾아가 직원들에게 아들과 이대호, 홍성흔 같은 동료 선수 사인볼을 나눠줬다. 이후 마음을 연 업체 대표와 담판을 지어 결국 4000억 원을 재예치하는 데 성공했다.
황 단장은 앞으로도 스포츠 전반에 걸친 인맥을 마케팅에 십분 활용할 생각이다. 그는 테니스뿐 아니라 스포츠계 전반에 건국대 출신 유명 선수나 지도자들을 많이 알고 있다고 했다. 스포츠를 이용한 은행 홍보는 물론이고 스포츠 인맥을 통한 영업도 강화해야 하는 게 그의 임무다. 특히 자신도 운동선수 출신이고 야구선수 아들을 키워 본 아버지로서 선수들의 생리를 꿰뚫고 있는 점도 큰 장점이다.
“운동선수들은 바빠서 돈 관리를 부모들이 해줍니다. 돈 가지고 있어 봤자 나중에 은퇴하고 사업하다 날리는 경우가 많죠. 이런 선수들의 체계적인 자산 관리를 우리 은행이 도맡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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