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아웃소싱 ‘플러스’의 마법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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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얘길 하다가 “무슨 일 하고 지내니?”라는 질문을 주고받았습니다. 이 친구는 잠깐 망설이다가 “기업의 금융거래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컨설팅해주는 업체에 다니고 있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

금융거래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도 아닙니다. 소프트웨어 활용법을 교육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소프트웨어를 사야 하고, 어디서 교육을 받아야 할지 최선의 방안을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제 질문은 당연했습니다. “그런 걸 기업들이 돈을 내고 사니?” 저만 이상한 사람이 됐습니다. 꽤 벌이가 좋다는군요.

노트북 한 대만 책상에 올리면 창업할 수 있는 시대라고 합니다. 이런 시대의 핵심은 ‘아웃소싱’입니다. 핵심만 내가 직접 하고 나머지는 모두 외주로 해결한다는 겁니다. 실제로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회사는 전엔 돈을 내고 사야 했던 사무용 프로그램과 기업 전산시스템 등을 무료로 제공하거나 매우 싸게 팝니다. 심지어 좋은 아이디어에 돈이 필요하다면 과거에 이 코너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 ‘킥스타터닷컴’ 같은 곳에서 사람들의 후원도 받을 수 있습니다. 투자자를 모으는 일까지 아웃소싱하는 셈입니다. 심지어 장부를 쓰는 게 어렵고 세무업무가 귀찮다면 아예 이를 값싸게 해외에 맡길 수도 있습니다. 인도의 핀택스 같은 회사는 미국인을 위한 세무대행 서비스까지 자국에서 싼값으로 해줄 정도입니다.

한국에서 창업하기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큰 차이 가운데 하나가 이런 아웃소싱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갓 창업한 기업인은 끊임없이 아웃소싱 업체의 구애(求愛)를 받습니다. “우리 서비스를 쓰면 더 싸고 품질이 좋다”며 아웃소싱 업체 사이의 경쟁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기업에서 인사업무만 20년을 한 사람이 창업한 회사들이 경쟁하고, 10년 경력의 회계사가 만든 회계 대행업체가 경쟁합니다.

반면 한국에서 창업하려면 ‘중소기업 지원센터’를 통해 이런 아웃소싱 서비스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창업 기업들은 그 센터의 눈에 들기 위해 서로 경쟁합니다. 아웃소싱 해줄 곳은 시혜를 베푸는 셈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받는 아웃소싱의 질은 과연 어떨까요?

대기업이 구매를 외부에 맡기고, 광고를 외부에 맡기고, 회계업무를 외부에 맡기고, 전산시스템 관리를 외부에 맡기면 이런 아웃소싱 업체들이 성장합니다. 그러면 그건 ‘플러스’의 경제가 됩니다. 특화된 아웃소싱 업체들도 다른 아웃소싱 업체를 고용할 테고, 전문가의 서비스가 보편화될 테니까요. 하지만 대기업이 구매도 계열사에 맡기고, 광고도 계열사에 맡기고, 전산시스템도 계열사에 맡기면 자연스레 전문가의 필요가 줄어듭니다. 그러면 서비스의 수준도 하향 평준화됩니다. 결국 ‘가장 싼값’을 부르는 업체만 살아남습니다. ‘마이너스’의 경제가 되는 셈이죠.

정부가 창업을 지원한다고 합니다. 기왕 할 거라면 창업을 꿈꾸는 기업들에 정부가 세운 창업지원센터 대신 시장경제가 만든 풍요로운 아웃소싱 업체들을 선물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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