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열 HP 아시아태평양본부 사업개발매니저(차장)는 요즘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 전역의 다양한 콘텐츠 회사들을 만나러 다니느라 바쁘다. 지난해에는 유아들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뽀로로’의 제작사 오콘, 네이버 지도를 만든 NHN과 제휴했다. PC가 없더라도 사용자가 프린터기에 달린 화면에서 콘텐츠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누르면 금세 원하는 내용을 인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애니메이션 앱을 누르면 색칠공부 페이지가 출력되고 , 신문을 누르면 프린터에서 원하는 기사를 뽑아 볼 수 있다. 앞으로는 영화 앱을 누르면 각종 티켓을 바로 출력할 수도 있다. 허 차장은 “인쇄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모든 회사가 우리들의 제휴 대상”이라며 “10년 전만 해도 프린터사업부에서 콘텐츠 회사를 ‘우리 편’으로 만들고 다닐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최근 정보기술(IT)업계의 화두는 ‘제휴’다. 누구와 손을 잡는지, 자기편을 얼마나 늘리는지가 생존의 필수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장의 판이 바뀌면서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기업들의 절박감 때문이다.
○ 콘텐츠, 제휴 인기도 1순위
요즘 NHN, 다음, 네이트 등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은 IT업계 제휴 바람의 단골손님이다. 전자회사뿐 아니라 자동차회사까지 제휴 문의가 부쩍 늘었다. 국내 검색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하는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의 경우 현재 파트너십을 맺은 회사가 HP,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다양하다.
이는 무선인터넷이 빠른 속도로 일상에 파고들면서 자동차와 TV, 프린터 등이 인터넷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기 때문이다. 냉장고, 에어컨까지도 인터넷 기능이 더해지고 있다. 누가 더 빠르게 인터넷을 활용해 인기 콘텐츠를 자기편으로 만드느냐가 중요해져 자연히 인터넷의 인기 서비스인 검색서비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이 제휴 1순위가 됐다. 임진환 한국HP 부사장은 “사용자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다양한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IT업계에서 가장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인터넷 회사와 전자업계의 만남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활발하다. 구글과 소니가 함께 스마트TV 시장에 진출했고, 삼성전자는 드림웍스, 컴캐스트 등 글로벌 영상 사업자들과 활발하게 제휴하고 있다.
○ “혼자서는 못 산다”…생태계 전쟁 시작
최근 구글이 발표한 모바일 전자지갑 ‘구글월릿’이 화제가 된 이유는 서비스 그 자체의 새로움보다 구글이 마스터카드 씨티은행 등 영향력 있는 글로벌 사업자들과 ‘한편’이 됐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IT시장이 급속히 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이른바 기업들 간의 ‘편먹기’도 중요해지고 있다. 전략적인 제휴가 늘고 있는 이유다.
스마트폰 시대에 자존심을 구긴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 초 자사의 모바일 운영체제(OS)를 안정적으로 적용해줄 제조사를 찾다 결국 노키아와 손을 잡았다. 노키아도 자체 OS에는 다양한 앱들이 붙지 않아 고전하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모바일 분야에서 구글과 전방위로 협력하며 함께 시장을 키우고 있다.
채승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과거 개별적으로 존재하던 서비스와 제품이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시장 변화로 급속히 서로 연결되고 있다”며 “이에 따라 개별 기업끼리의 경쟁이 공생할 수 있는 기업 집단인 ‘생태계’ 전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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