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로컬코드’를 입혀라

  • 동아일보

수원 화성의 상층부와 삼성디지털시티를 상징하는 반도체 디자인을 조합한 ‘래미안 영통 마크원’의 주 출입구. 서울 강서구, 양천구 일대 지형지물을 접목한 ‘강서힐스테이트’의 잔디광장 ‘곰달래원’, 한강 밤섬을 테마로 수경공간을 조성한 ‘한강밤섬자이’(왼쪽부터). 삼성물산·현대건설·GS건설 제공
수원 화성의 상층부와 삼성디지털시티를 상징하는 반도체 디자인을 조합한 ‘래미안 영통 마크원’의 주 출입구. 서울 강서구, 양천구 일대 지형지물을 접목한 ‘강서힐스테이트’의 잔디광장 ‘곰달래원’, 한강 밤섬을 테마로 수경공간을 조성한 ‘한강밤섬자이’(왼쪽부터). 삼성물산·현대건설·GS건설 제공
경기 수원시 영통구 신동에서 지난달부터 분양 중인 ‘래미안 영통 마크원’ 단지의 주 출입문은 언뜻 보면 수학 기호 루트(√)를 변형한 것처럼 생겼다. 그러나 여기에는 수원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시크릿 코드’가 숨어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아파트가 들어서는 수원과 단지 인근에 위치한 삼성디지털시티를 건축요소에 녹이기 위해 조선시대 성곽, 화성의 상층부 이미지와 반도체 칩에 새겨진 패턴을 단순화한 디자인을 조합해 아파트 주 출입문을 만들었다.

각 동의 꼭대기 라인에도 화성 성곽의 상층부 이미지를 재현했다. 건물 위에 왕관을 씌운 듯 올록볼록한 모양은 공격해 오는 적을 높은 곳에서 제압할 수 있게 한 화성 성곽의 진지를 본뜬 것이다. 보통 회색과 검은색 등 무채색을 활용해 도회적인 느낌으로 외곽을 칠하는 다른 ‘래미안’ 단지들과 달리 화성의 주 색상인 테라코타색(붉은황토색)을 건물 중층부에 칠한 것도 눈길을 끈다.

최근 신규 분양에 나선 아파트들이 아파트 단지 외관과 조경시설 등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지역의 문화나 상징물을 뜻하는 ‘로컬 코드’를 접목하고 나섰다. 실수요자 중심으로 변한 주택 시장에서 아파트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려는 지역주민들의 성향을 반영한 로컬 코드 마케팅이다.

○ 지역 내 지형지물 단지에 접목

지난달 27일 본보기집(모델하우스)을 열고 분양에 나선 현대건설의 ‘강서힐스테이트’에도 서울 강서구 화곡동과 인근 양천구 신월동 일대의 옛 지형지물을 활용한 단지 내 주민 휴식 공간이 곳곳에 설치될 예정이다.

단지 한가운데에 놓일 잔디광장은 신월동에 있던 옛 마을 이름 ‘곰달래’(달빛이 맑고 곱게 비친다는 뜻)에서 따와 ‘곰달래원’으로 명명했다. 이곳에는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조선시대 정자 소악루에서 이름과 디자인을 딴 카페테리아가 설치된다. 소악루는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 종종 찾아 그림을 그린 곳이다. 또 야외 북카페를 표방한 ‘독서원’과 허브 등 녹색 식물을 심어 삼림욕을 할 수 있게 구성한 ‘치유원’ 등은 모두 과거 이 지역에 살았던 명의 허준이 동의보감을 쓴 ‘허가바위’(서울특별시기념물 제11호)를 모티브로 삼은 것이다.

이달 일부 가구 일반분양에 나서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청담자이’에도 지역 특성이 담겼다. GS건설은 ‘청담자이’ 단지 안에 92m² 크기의 ‘진경산수 연못’과 길이 43m에 이르는 ‘맑은 물길’을 조성할 계획이다. ‘맑은 연못’이라는 뜻의 청담(淸潭) 지명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 실수요 시장에선 지역주민이 ‘VIP’

이처럼 건설사들이 앞다투어 새 아파트에 ‘로컬 코드’를 입히고 나선 것은 지역 주민들이 요즘 분양시장에선 가장 큰 고객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권오진 강서힐스테이트 분양소장은 “과거에는 아파트 수요의 절반 정도가 투자를 목적으로 한 외지인으로 추정됐으나 최근 분양하는 단지들은 지역 내 수요가 80%대에 이른다”고 말했다. 강우원 세종사이버대 부동산경영과 교수는 “인구 구조의 변화로 아파트 실수요자들이 ‘원거리 투자자’에서 ‘근거리 지역주민’으로 바뀌고 있는 만큼 이들을 타깃으로 한 설계가 반영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로컬 코드’가 주거지에 접목되는 것을 사회학적 변화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남기범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아파트를 재산증식 수단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 인식하면서 단지에 정체성을 입히려는 욕구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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