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 계열사에 편법적인 ‘일감 몰아주기’로 비난을 받았던 대기업들이 퇴직연금마저 계열 증권사 ‘몰아주기’에 나서자, 불공정 경쟁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14개 증권사들이 올 상반기 기아차의 퇴직연금 운용기관 선정과 관련해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운용기관이 이미 정해진 것 아니냐”는 내정설이 금융권에 돌고 있다. 기아차는 “운용사 선정방식 등을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지만 금융권에서는 계열 증권사인 HMC투자증권이 운용기관으로 선정될 것이라는 소식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아차의 퇴직연금 적립규모는 1조 원 이상으로 금융회사들이 모두 군침을 흘리는 대어(大魚)에 속한다. 한 증권사 퇴직연금 담당자는 “(운용기관으로 선정되기 위해) 유치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작년 현대차 사례가 있어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현대차는 퇴직연금 자산관리기관으로 은행과 보험사 13곳을 선정했지만 운용 관리기관으로는 계열사인 HMC투자증권 1곳만 골랐다. 퇴직연금 적립금 1조 원을 HMC투자증권에 모두 맡기면서 증권업계 최하위였던 HMC투자증권의 퇴직연금 운용 순위는 단숨에 1위로 올라섰다.
다른 대기업들도 계열 금융사를 적극 밀어주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작년 말 계열 증권사인 하이투자증권을 퇴직연금 운용사로 선정했고, 삼성그룹도 삼성생명과 삼성증권 등 계열 금융사와 퇴직연금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 계열사가 아닌 증권사들은 “계열 증권사 몰아주기 때문에 경쟁에서 원천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며 “대기업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 퇴직연금 안정성에 문제가 생기고 퇴직연금을 맡긴 근로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 방침을 밝힌 만큼 퇴직연금 시장에서도 특혜성 몰아주기를 제재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금융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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