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내달 30여명 교체… 금감원 “재선임 바람직 안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6일 03시 00분


“감사의 ‘감’자도 꺼내지말라”… 금감원 ‘낙하산‘ 접는다

금융감독원 간부들이 퇴직 이후 금융회사 감사로 내려가는 ‘낙하산 관행’이 이명박 대통령의 질책으로 중단된다. 이 대통령은 낙하산 감사를 ‘나쁜 관행과 조직적 비리’의 원흉으로 지목했다. 당장 다음 달 증권사와 보험사의 정기 주주총회에서 새로 선임되는 30여 명의 상임감사 자리에 금감원 출신이 배제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저축은행그룹 사태 전까지만 해도 민간 금융회사의 상임감사는 금감원 출신 ‘선배’가 금감원에서 퇴직하는 ‘후배’에게 세습하듯 대물림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부실 감사’로 금융 신뢰를 실추시킨 주범으로 지목되고, 이에 분노한 대통령이 강하게 질책하면서 금감원은 ‘낙하산 감사 관행’ 철폐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금감원 측은 “금감원 출신의 금융회사 감사 중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감사에 대해서는 재선임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 금감원의 방침”이라며 이런 의견을 금융회사에 전달하고 협조를 구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낙하산 감사가 이뤄진 원인을 ‘왜곡된 인사권’과 ‘직원의 경력 세탁’에 있다고 보고 이런 관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 금감원 ‘그들만의 리그’에서 빠진다


민간 금융회사의 6월 주총을 한 달 앞둔 5월은 금감원의 ‘스토브리그’로 불린다. 금융회사들이 임기를 마친 상임감사의 후임을 추천해 줄 것을 금감원에 요청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연봉과 대우 등 조건이 좋은 자리면 경쟁구도까지 형성된다. 보통 시중은행 감사는 4억∼5억 원, 보험·증권사 감사는 2억∼3억 원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 보니 승진이 어렵다거나 정년이 다가오는 금감원 직원들은 ‘노후보장책’이라며 민간 금융회사로 몰린다.

하지만 대통령의 호된 질책 이후 금감원 내부에서는 “감사의 ‘감’자도 꺼내지 말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번 증권 보험사 주총에서는 ‘원래 저 자리는 금감원의 몫’이라고 여기던 감사 자리가 30여 곳이나 나오는데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는 상황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올해 스토브리그는 어느 해보다 뜨거울 것으로 예상했지만 금감원이 궁지에 몰리며 스스로 감사 추천 관행을 폐지하겠다고 하니 금융회사들도 어쩔 줄 모르고 있다”며 “최근 기류를 보면 금감원 출신들이 ‘기피 인물’이 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42개 증권사 가운데 이번 주총에서 감사 임기가 만료되는 곳은 현대증권 한화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24곳에 이른다. 이 중 금감원이나 옛 증권감독원 출신이 감사로 있는 회사가 16곳이다. 예전 같으면 이 16곳의 감사 자리는 연임되거나 금감원 출신에게 대물림되는 게 관행이었다.

12개 손해보험사 중에서도 현대하이카 그린손해보험 서울보증보험 등 3곳, 14개 생명보험사 가운데 알리안츠생명 흥국생명 신한생명 PCA생명 우리아비바생명 등 5곳에서 올해 감사 임기가 끝난다. 여기에 자산운용사나 6월 결산법인인 저축은행까지 감안하면 금감원 출신이 거액의 연봉을 받고 갈 수 있는 감사 자리는 훨씬 많아진다. 은행권에서는 3월 주총에서 이미 금감원 국장급 이상 간부들이 국민은행 신한은행 한국씨티은행 등 3곳의 감사 자리를 꿰찼다.

○ 왜곡된 인사권과 보직 세탁 바로잡기


금감원 개혁을 위해 조만간 꾸려질 태스크포스(TF)는 낙하산 감사가 생겨난 배경인 금감원의 인사(人事) 관행부터 손볼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금감원에서는 원장이 직접 인사안을 짜는 게 아니라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출신 부원장들이 각각 은행 증권 보험 비(非)은행(저축은행, 카드, 캐피털) 분야의 인사권을 행사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인사권이 왜곡된 결과, 원장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부원장에게 ‘줄서기’를 하고 끼리끼리의 조직문화가 형성돼 훗날 퇴직 시에서도 분야별로 감사 자리를 대물림하는 관행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퇴직 예정인 직원들의 보직(補職)을 세탁해주는 인사 관행도 TF가 철폐할 과제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금감원(2급 이상) 퇴직자는 퇴직 전 3년간 맡은 업무와 관련된 업체에는 2년 동안 취업할 수 없다. 이를 피하기 위해 금감원에서는 퇴직 예정자를 은행 증권 보험 비은행 등 일선 업무에서 빼서 총무국 소비자보호센터 인력개발실 등 후선 업무에 배치했다. 지난해 금융권 감사로 취업한 퇴직자 19명 가운데 11명이 이런 ‘보직 세탁’을 거쳤다. 또 신용회복위원회 등 외곽의 유관기관에 2년간 파견 근무를 시킨 뒤 금융회사 감사로 보내는 우회 경로도 많이 활용됐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낙하산 감사 문제는 대통령의 관심이 워낙 큰 사안이어서 TF가 금감원의 ‘철폐 선언’ 이상의 고강도 대책을 검토할 것”이라며 “공직자윤리법 자체가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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