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가입할게 우리 제품 사다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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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금융사에 ‘逆꺾기’… 경쟁 치열해 거절 어려워

“퇴직연금 가입해 주면 우리 제품을 사줄 수 있습니까?”

일부 대기업이 퇴직연금 가입에 대한 대가로 자사상품 구매를 제안하는 이른바 ‘역(逆) 꺾기’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퇴직연금 시장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구속성 영업 행위인 ‘꺾기’는 금융회사가 기업에 대출해 주는 조건으로 퇴직연금 가입을 강요하는 형태가 많았다. 이제는 역방향으로 대기업이 제안을 해오는 흐름이 나타나 이를 ‘역꺾기’라고 부른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일부 대기업은 퇴직연금에 가입할 때 제공받을 수 있는 혜택을 제시하라고 금융회사에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보험사의 임원은 “기업들이 거꾸로 자사 제품을 살 것을 요구해온다”며 “보험사들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어 상대적으로 영업이 쉬울 것으로 생각하지만 다들 모기업이 있는 데다, 증권 보험 은행이 모두 퇴직연금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시중은행의 여신담당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퇴직연금제를 도입하면 자기 회사가 출시하는 신상품을 사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해오는 데가 몇 군데 있다”고 전했다.

퇴직연금에 가입하는 대신 기업 직원들의 신용대출 금리를 낮춰주는 영업 형태는 이미 일반화돼 있다. 한 시중은행의 여신담당 임원은 “대기업들은 퇴직연금 가입을 진행하며 자기 회사 직원의 신용대출을 낮은 금리로 해달라거나 ‘다른 은행은 금리가 어떤 수준이다’며 낮춰달라는 제안을 많이 한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역꺾기가 성행하는 이유는 퇴직연금시장에서는 직원이 많은 대기업이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퇴직연금 사업자 수가 50개를 넘어서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금융회사가 대기업의 요구를 거절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더욱이 삼성생명, 삼성화재, HMC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현대증권, 한화손해보험, 동부생명, 동부화재 등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들이 계열사 물량을 쥐고 있어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사정이 더욱 절박해졌다. 금융감독 당국도 역꺾기에 대한 소문을 포착하고 사실 파악에 나섰지만 사실상 제재는 힘들다고 말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당사자들이 협의해 진행하는 사업이다 보니 양쪽에서 입을 다물면 불공정행위를 찾기 힘들다”며 “지난해부터 퇴직연금 관련 불공정거래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제보가 한 건도 안 들어왔다”고 전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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