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vs 정유업계 ‘기름값 적정성 논란’ 진실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0일 2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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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지적한 이후 정부와 정유업계의 휘발유값 논쟁이 수 년 만에 다시 재연됐다. 휘발유값이 크게 뛸 때마다 벌어진 논쟁이지만 누가 맞는지 속 시원하게 밝혀진 적은 없다. 정부가 이번에야말로 정유업계의 비밀을 파헤치겠다고 벼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양측이 갑론을박을 벌이는 논점은 크게 세 가지. 선진국과 비교한 국내 휘발유값 수준과 국내 휘발유값이 국제 유가가 뛸 때는 더 많이 오르고 내릴 때는 찔끔 내리는 ‘가격 비대칭성’, 그리고 정유사들이 국내 소비자를 봉으로 삼아 고수익을 올리느냐는 점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국내 휘발유값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라는 정부의 주장은 틀렸지만 가격 비대칭성이나 정유사의 고수익에 대한 정부의 주장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① “국내 휘발유값은 OECD 최고 수준”

논쟁을 촉발한 것은 9일 윤증현 재정경제부 장관의 발언이다. 윤 장관은 이날 “국내 세전 휘발유 상대가격은 OECD 평균을 100으로 볼 때 113.2로 높아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1월 OECD 국가의 휘발유 평균가격(세전)은 L당 924.9원인 데 반해 한국은 1046.7원으로 일본(1173.5원) 다음으로 비싸다.

하지만 정유업계는 정부의 분석이 틀렸다고 반발하고 있다. 윤 장관이 인용한 석유공사의 통계는 국내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고급휘발유를 놓고 비교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일반적으로 옥탄가 95 이상인 휘발유를 쓰지만 국내에서는 고급 휘발유가 전체 휘발유 매출의 1% 정도만을 차지한다. 옥탄가는 휘발유가 연소할 때 이상 폭발을 일으키지 않는 정도를 수치로 나타낸 것으로 옥탄가가 높을수록 휘발유값이 비싸진다.

특히 정유업계는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옥탄가 91∼94의 보통 휘발유값은 OECD 평균 휘발유값보다 5%가량 싸다는 주장이다. 국내 휘발유값이 OECD 최고 수준이라는 정부의 지적이 틀린 셈이다.

하지만 “국내 휘발유값이 OECD 평균보다 싸다”는 정유업계의 반박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한국과 비슷한 품질(옥탄가 92)의 휘발유를 쓰는 OECD 11개 국가와 비교해도 한국의 휘발유값은 그리 싼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한국의 보통 휘발유값은 L당 814.2원으로 11개 국가 가운데 5위에 해당돼 평균가격(802.8원)보다 높았다.

② “오를 땐 더 오르고 내릴 땐 찔끔 내려”

국내 휘발유값과 국제 유가의 ‘비대칭성’은 이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직접 조사를 지시했을 정도로 정부가 벼르고 있는 문제. 국제 휘발유 가격의 오름폭보다 국내 휘발유값이 더 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국제 휘발유값이 떨어질 때도 국내 휘발유값은 계속 오르는 현재의 상황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다. 정부는 지식경제부를 중심으로 ‘석유가격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이 같은 비대칭 현상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다.

정유업계는 국내 정유회사가 국내 휘발유값을 결정할 때 기준으로 삼는 국제 휘발유 가격(싱가포르 현물 가격)은 1주일 전 주간 평균가격으로 현재 가격과는 시차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해외에서 원유를 국내로 가져오는 데도 1∼2개월이 필요해 국제 유가와 국내 휘발유 가격을 같은 시점으로 놓고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유업계의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09년 남재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에게 의뢰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국제 유가와 국내 휘발유값 간 시차를 감안해도 가격 비대칭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실제로 1997년 1월부터 2008년 11월 말까지 국제 휘발유값이 1원 오를 때 국내 휘발유값은 1.15원 올랐지만 국제 휘발유값이 1원 내릴 때는 0.93원만 내린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휘발유값은 국제 휘발유값이 오를 때 15% 더 오르고 내릴 때는 7% 덜 내렸다는 의미다.

③ “국내 가격이 정유사의 수출가격보다 높다”

2009년 석유산업 자유화(1997년) 이후 처음으로 정유 부문에서 적자를 냈던 정유회사들은 지난해 실적이 대폭 개선됐다. SK이노베이션은 2010년 석유사업에서 매출 30조3617억 원, 영업이익 9854억 원을 기록해 전년보다 매출은 25.1%, 영업이익은 23배로 늘었다. GS칼텍스는 지난해 매출액이 35조3158억 원으로 전년보다 26.5% 늘었고 영업이익은 1조2001억 원으로 60.3% 증가했다.

정부는 정유사들이 이런 고수익을 이중가격 정책, 즉 국내 휘발유 가격은 높게, 수출가격은 낮게 유지해서 얻는 게 아닌지 의심한다. 이에 대해 정유사들은 국내에서 휘발유를 팔면 마진이 2%에 불과하다고 반발한다.

하지만 정유사들의 주장은 의심스러운 대목이 많다. 공정위 보고서는 1997년 1월부터 2008년 9월까지 국제 휘발유값이 1원 오를 때 정유회사들이 해외에 수출한 휘발유값은 0.9원 오르는 데 그쳤다. 국제 유가가 오를 때 해외에 수출하는 휘발유값은 덜 올리고 국내 휘발유값은 더 많이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수출로 올린 정유회사들의 매출 중 일부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수출 가격을 전가시킨 대가라는 의미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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