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명이 승진하고 7명이 자리를 옮겼다. 삼성그룹이 3일 밝힌 사장단 인사의 내용이다. 가장 큰 특징은 ‘새 얼굴’들이 전면에 나섰다는 점이다. ‘변화’와 ‘젊은 조직’을 강조했던 인사 방향의 실현이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구체적인 ‘변화의 방향’도 드러났다. 이번 인사의 키워드는 ‘하이브리드’와 ‘스피드’로 요약된다.
○ 하이브리드(혼혈)
무엇보다 외부에서 영입된 인사들의 승진이 눈에 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시스템LSI 담당 사장으로 내정된 우남성 부사장과 삼성SDS 대표이사 사장으로 내정된 고순동 부사장은 각각 미국의 대표기업인 AT&T와 IBM에서 근무하다 삼성에 영입된 인물이다.
우 부사장이 맡게 된 시스템LSI 부문은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인 메모리반도체가 아닌 비(非)메모리반도체 분야다. 삼성은 인사의 배경을 설명하며 우 부사장이 “스마트폰용 모바일 CPU 사업을 확대해 시스템LSI 경쟁력을 크게 키웠다”고 설명했다. 미국 최대의 통신사인 AT&T에서 근무하며 쌓은 노하우를 높이 사 ‘미래 먹을거리’를 맡긴 것이다. 고 부사장 또한 다르지 않다. IBM은 삼성SDS가 담당하는 정보기술(IT) 서비스산업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세계 각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삼성은 고 부사장이 “삼성SDS를 글로벌 IT솔루션 기업으로 육성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는 삼성이 글로벌 기업에서 활약한 인재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앞으로 외부에서 더 많은 인재를 영입하고 더 큰 기회를 주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출신인 최치훈 삼성SDI 사장 또한 이번 인사를 통해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구조에서 핵심 고리 가운데 하나인 삼성카드 사장으로 임명됐다.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대신 외부의 인재를 적극적으로 채용해 기존 조직과 혼성으로 결합시키는 ‘하이브리드’ 인사가 보편화된 것이다.
○ 스피드
일반적으로 삼성에서는 임원 승진 연한을 두고 내부적으로 평균보다 1년 빨리 승진하면 ‘발탁 인사’, 2년 앞서 승진하면 ‘대(大)발탁 인사’라고 부르는 관행이 있다. 그런데 이번 인사에서는 삼성전자 김재권 부사장이 삼성LED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원 9년 만에 고속 승진하면서 화제가 됐다. 상무∼부사장에 이르는 기간은 평균 13년이었다. 이와 함께 고순동 삼성SDS 부사장, 김신 삼성물산 상사부문 부사장도 부사장 승진 후 만 1년이 채 되지 않아 사장으로 승진해 이건희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이런 새로운 메시지를 담은 인사 발표는 3일 하루에만 삼성그룹 내부 게시판을 통해 임직원이 11만 건 이상 조회했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삼성 측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화제를 모으는 글의 조회 건수는 5만 건 정도에 불과하다.
한편 후배들의 승진과 함께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 고문이나 상담역 역할을 맡게 될 선배들도 눈에 띄었다. 최지성 부회장의 승진으로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는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과 김재욱 삼성LED 사장, 배호원 삼성정밀화학 사장, 유석렬 삼성토탈 사장, 성영목 호텔신라 사장 등이 그들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지성 사장이 대표이사직을 맡으며 부회장으로 승진한 것은 ‘이재용 시대의 새로운 인물들’로 주도권이 넘어가는 것을 말해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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