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기농 식품 유통업체인 홀푸드는 분기 매출만 2조 원이 넘는다. 하지만 여느 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두꺼운 사규집이 없다. 명문화된 강제 규정이 없는데도 회사는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수익을 낸다. 지점 직원들은 동업자처럼 공동체의식을 가지고 함께 의사결정을 한다.
홀푸드의 독특한 운영원리와 조직문화는 평등한 부족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서로를 통제하는 원시 씨족 공동체에 비유할 수 있다. 세세한 내용까지 기록한 사규가 필요하지 않은 이유도 구성원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상식과 합의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66호(2010년 10월 1일자)는 홀푸드처럼 고대 인류의 커뮤니티 문화를 조직 운영에 접목한 현대기업들을 심층 분석했다.
○홀푸드의 투명한 조직문화
홀푸드는 소규모 자치조직 중심으로 회사를 운영한다. 홀푸드 직원들은 본사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해당 매장에서 필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야채코너 직원들은 매장 내 제품 구매, 가격 결정, 판매관리 책임에 대한 전권을 갖는 식이다.
원 시 씨족 공동체와 같은 커뮤니티 문화를 기업 운영에 접목하는 현대 기업이 늘고 있다. 매장 직원들이 상품 조달과 판매 계획을 직접 짜고 직원도 뽑는 미국 유기농 식품 유통업체 홀푸드(위사진)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는 유튜브가 대표적이다. DBR 자료 사진
회사의 고유한 영역인 직원의 채용이나 급여도 직원들이 직접 결정한다. 지점 직원들은 4주 단위로 모든 매장의 팀들을 대상으로 노동시간당 이윤을 계산하고, 누적 생산성 자료에 따라 보너스를 받는다. 직원들은 당연히 매장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뛰어난 사람만 고용하려고 노력한다. 이는 ‘사냥 시즌’을 맞은 부족이 최고의 사냥꾼으로만 팀을 구성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비슷하다.
홀푸드는 자치조직이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수평적이고 투명한 조직문화를 보유하고 있다. 직원들은 주기적으로 생산성, 협업 정신을 기준으로 서로의 성과를 평가하고 피드백을 제공한다. 직원들을 자극하는 것은 상사가 아니라 주변 동료들이 주는 피드백과 압박감이다. 여느 미국 기업과 달리 사내 모든 직원의 급여 정보를 공개하고, 최고경영자(CEO)의 급여도 직원 평균의 19배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고어앤드어소시에이츠 ‘자치조직’
고어텍스로 유명한 고어앤드어소시에이츠도 위계의식이 희박한 수평 조직구조를 갖고 있다. 홀푸드가 지점 단위로 자치조직을 운영하듯이 이 회사도 각 공장의 크기를 200명 정도로 제한하고 있다. 주차장 크기도 200대 규모에 불과하다. 주차장이 다 차면 공장을 증설하는 식이다.
공식적인 조직도와 명령 체계가 없어도 직원들은 자치사회를 구성하듯 원하는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직원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할지 찾아나가야 한다. 신입사원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직무를 정하지 않고 사람을 채용한다. 신입 직원에게 스스로 자신의 업무를 결정하도록 한다. 이는 직무 단위로 사람을 채용하는 대부분의 미국 기업에서는 흔치 않은 모습이다.
직원에게 최대한의 자율을 주는 고어앤드어소시에이츠의 조직문화는 사장 선임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현재 CEO는 2005년 관리자들의 투표로 선임됐다. 사냥에 가장 뛰어난 사람을 부족의 리더로 추대하는 원시 공동체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작지만 강한 조직 비결은 신뢰
부족 운영 원리를 기업 경영에 적용하려면 먼저 사내에 소규모 조직을 활성화해야 한다. 홀푸드와 고어 모두 소규모 조직을 운영의 기본 단위로 활용하고 있다. 조직이 커지면 시장과 고객에 대응하는 능력이 나아지겠지만 장점보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 내부 인간관계가 늘어나는 속도가 외부 고객 대응능력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자칫 사내 정치만 복잡해지고 조직이 보수화할 수 있다. 예컨대 조직이 2배로 늘어 시장대응 능력이 4배로 늘어나도, 내부 인간관계가 8배로 늘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내부 지향적으로 변한다. 로마 군대가 자치 능력을 가진 100명 단위의 부대를 운영한 것이나 통신기술이 발달한 현대 군대에서 중대 크기를 200명 미만으로 제한한 이유도 인간적 유대감과 동료애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조직의 최적 규모는 200명 정도인 셈이다. 국내 한 기업이 ‘회사 내 회사(Company in Company)’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도 같은 취지다.
규모가 작은 조직은 목적의식과 상식을 공유하기 때문에 명문화된 규칙이 없어도 조직을 운영할 수 있다. 규칙이 많으면 필연적으로 규칙을 많이 아는 사람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된다. 규칙에 밝은 행정가가 장악한 조직은 보수화하고, 외부 환경 대응력이 떨어진다. 직원이 고객이나 동료보다 CEO를 더 의식하면 그 조직은 필연적으로 내부 정치 지향적 조직이 되고 만다. 결국 조직 보수화의 악순환에 빠진다.
반면 자율과 책임을 부여하면 직원들은 스스로에게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해 조직을 운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은 CEO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객과 동료 직원부터 살핀다. 이들이야말로 성과 창출의 근원이며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김용성 세계경영연구원 연구위원 yskim@ism.or.kr
정리=박용 기자 parky@donga.com
비즈니스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영 저널 DBR(동아비즈니스리뷰) 66호(2010년 10월 1일자)의 주요 기사를 소개합니다. DBR 웹사이트 www.dongabiz.com, 개인 구독 문의 02-721-7800, 단체 구독 문의 02-2020-0685
세종대왕과 링컨 대통령 포용력 분석해보니 ▼마인드 매니지먼트
포용의 의미는 너그러운 품성이나 자선적 행동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목적 지향적이고 사실을 중시하는 전략적 행동양식으로 파악해야 한다. 역사적 인물 중에서 뛰어난 포용력을 보인 리더가 바로 세종대왕과 링컨 대통령이다. 세종대왕과 링컨 대통령은 사람을 쓰는 데 특정 정파나 계급, 자신에 대한 충성심 여부보다 누가 그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냐를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세종대왕과 링컨은 누구보다도 대의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지만 대의 실현을 위해 자기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체면, 조직의 일사불란함을 고집하지 않았다. 사실에 입각한 포용을 통해 다양한 인재를 모은 것이야말로 그들의 가장 뛰어난 전략이자 훌륭한 무기였다. 그 결과 세종대왕은 조선왕조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고, 링컨 대통령은 분열의 위기를 극복하고 미국이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으로 가는 여정을 닦아 놓았다. SK에너지 정현천 상무가 세종대왕과 링컨 대통령의 포용력을 분석했다.
성장 부르는 은밀한 가격전략, 포커서 배워라 ▼AT커니 리포트
카드 패를 숨기는 것은 포커게임을 할 때뿐 아니라 인터넷상에서의 프라이싱 전략 수립에서도 현명한 전략이다. 컨설팅회사 AT커니는 인터넷상에서 유용한 ‘은밀한 가격 전략(Covert Pricing)’을 실행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은밀한 가격 전략이란 포커 게임에서 패를 감추듯이 경쟁사에 가격 정책을 노출하지 않으면서 세분된 고객을 대상으로 차별화된 유인책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전략의 핵심은 수익성 높은 세분시장에 위치한 소수의 고객에게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단기 프로모션을 하는 것이다. 속도도 중요한 요소다. 가격 결정과 관련한 모든 기능 및 시스템을 단일 가격 결정 조직으로 통합해 의사결정 시간을 줄여야 한다. 은밀한 가격 전략을 잘 활용하면 시장 점유율 확대를 통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고객 세분화를 통해 수익성 높은 고객 포트폴리오를 보유하면서 고객별 가격 정책을 노출하지 않기 때문에 경쟁사로부터 시장을 방어할 수 있다. AT커니 리포트에서 은밀한 가격전략의 실천 방법론을 자세히 설명했다.
시가평가제가 ‘탐욕’을 넘어설 수 없는 까닭 ▼회계를 통해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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