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내가 청년 백수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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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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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청년 실업자라면 당장 취업을 포기하고 정치 조직을 만들겠다. 청년 실업 해결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갖는 조직이다. “2년 뒤에 취업시켜주겠다”고 약속하고 조직에 헌신할 청년 실업자 100명도 뽑겠다.

우리가 나서면 첨단 정보기술(IT) 인프라를 이용해 회원이 100만 명을 넘는 거대한 이익집단을 만들 수 있다. 20대 636만 명 가운데 3분의 1만 참여해도 200만 명이 넘는다. 이래야 민주노총, 한국노총, 변호사 의사 약사 회계사협회 등 한국에서 가장 힘이센 이익단체와 맞설 수 있다. 정당에도 ‘말발’이 먹힌다. 각자 살겠다고 발버둥쳐봤자 이미 수가 정해진 의자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만 격화될 뿐이다. 큰 그림은 그대로다.

기성세대에 찍혀 취직이 안 될까 봐 참고 있어 그렇지, 실업이 우리만의 잘못인가? 김영하가 소설 ‘퀴즈쇼’에서 “영어, 해외 경험, 상상력, 첨단 IT 문화에 대한 이해, 열린 마음을 비롯해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춘 세대가 가장 취업이 안 된다”고 한탄할 정도다.

더는 우리 문제를 기성세대에게 맡길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발목이 잡혀 있다. 사회 시스템을 세계화와 성장률 저하 시대에 맞춰 변화시킬 의지도 능력도 없다. 88만 원 세대가 고통의 신음을 낸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변한 것은 없다.

정치인과 관료는 청년 정책을 항상 후순위로 미룬다. 54명이나 되는 비례대표 가운데 청년 실업을 전담할 전문가를 뽑은 정당이 있던가. 대기업 노조는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 매몰 돼 미래의 노동자를 외면한 지 오래다. 시민단체는 스스로 정치조직이 돼 자신의 이슈에만 파묻혀 있다.

오피니언 리더도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돈을 쏟아 부어 자식의 ‘스펙’을 슈퍼급으로 만들 힘이 있다. 자식이 힘에 부치면 지인이 있는 직장 인턴으로 들여보내 정규직 취업으로 연결시킨다. 이번 외교부 장관의 스캔들은 너무 적나라해서 그렇지 빙산의 일각이다. 서로 자식을 인턴으로 받아주는 ‘인턴 품앗이’도 퍼져 가고 있다.

회원 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우선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하고 “세대 간의 공정성도 신경을 써 달라. 미래에 국민연금과 통일비용 부담은 지금 청년들이 해야 한다”고 말하겠다. 기획재정부 장관도 만나 “일자리를 해외로 넘기는 대기업보다 한국에 일자리를 만드는 외국기업에 인센티브를 더 줘라. 아이디어와 열정만 있으면 쉽게 벤처기업을 창업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경제 생태계를 바꿔라”고 요구하겠다.

보건복지부 장관에게는 “제발 서비스업 일자리 창출 정책의 발목을 잡지 말라”고 경고하겠다. 재벌 총수에게는 “한국 대기업의 최대 약점인 창의성 결핍은 20대를 많이 뽑아 활용해야만 돌파가 가능하다”고 읍소하겠다.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2012년 1월 조직을 정당으로 전환해 4월 19대 총선에서 각 지역구에 후보자를 내겠다. 원내 교섭단체만 구성할 정도로 표를 얻기만 한다면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 돈도 걱정이 없다. 정부에서 수십억 원의 정당 보조금이 나오기 때문이다. 나와 조직원 100명의 취업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이병기 경제부 차장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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