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와인 선물을 소개하는 카탈로그가 속속 필자에게 도착한다. 무심코 넘기다가 지난 설날 때만 하더라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가 눈에 많이 띈다. 이 둘은 국내 여러 와인 할인행사에서도 여간해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와인이다.
명절 때만 팔려고 와인 수입을 시작했다는 어느 회사의 카탈로그는 이탈리아 와인 일색이다. 이들 와인 중 3분의 1을 다름 아닌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가 차지했다. 올해 설까지만 해도 부르고뉴 와인으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고 전해지는 이 회사가 올해 추석에는 이 두 와인을 승부수로 띄운 것이 분명하다. 이렇다 보니 언젠가 이 회사 관계자가 바롤로 앞에서 “와인 초보 시절에 바롤로나 바르바레스코는 그냥 ‘이탈리아의 값나가는 좋은 와인’이라고 외운 적이 있다”고 말했던 일도 떠올랐다.
와인을 즐기는 인구가 많이 늘었다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여전히 입에 잘 붙지 않는 수많은 와인 이름을 외우는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이런 스트레스는 명절에 선물용 와인을 고르는 스트레스에 비할 바 못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특히 와인을 즐기는 분을 위한 선물이라면 한정된 예산으로 얼마짜리 와인인지를 간접적으로라도 전달할 수 있는 유명 와인을 골라야 하는 부담이 크다. 이를 감안하면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의 부각은 새삼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지난해 11월 이탈리아의 와인 전문 옥션인 ‘제라르디니 & 로마니 와인 옥션’은 전 세계 와인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높다는 이탈리아 와인 28개를 발표했는데, 이 중 11개가 바롤로(8개)와 바르바레스코(3개)였다.
이 둘은 이탈리아 서북부 피에몬테 지방의 랑게 언덕 주변 테루아에서 네비올로라는 까탈스러운 품종만을 사용해 만든 와인이다. 포도의 이런 특성 탓에 그 어떤 와인보다 생산과정에서 와인업자의 애간장을 태우지만 ‘레드 와인계의 블록버스터’로 불리는 이들 와인에 젊은 양조인들은 인생을 건 도전을 오늘도 계속하고 있다.
두 와인 모두 타닌 성분이 많고 산도와 알코올 도수가 높은 생명력 긴 와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생산량이 많지 않다는 점은 늘 안타깝다. 이는 곧 국내에서도 병당 최소 7만 원 이상은 지불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두 와인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큰 의미는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바롤로가 좀 더 많은 지지를 받는다. 따라서 빈티지까지 비슷한 두 와인을 한자리에서 마신다면 바르바레스코를 먼저 마시는 편이 좋겠다.
김혜주 와인칼럼니스트
● 이번 주의 와인
엘리오 알타레 바롤로
1970년대 바롤로는 품질 저하로 인해 시장으로부터 외면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위기는 양조법 개선을 통해 넘길 수 있었는데, 이때 양조법 개혁을 앞장서 이끈 사람이 바로 엘리오 알타레였다. 새로운 양조법을 적용한 바롤로는 숙성기간이 길지 않아도 충분히 마실 만한 와인으로 재탄생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바롤로를 사람들은 ‘모던 바롤로’라고 일컬으며 전통 바롤로와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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