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대표상품 10년내 대부분 사라질것” 위기경영 재시동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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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한곳 모을 구심점 역할
전략기획 업무 부활 검토
‘후계 승계 경험’ 시간도 벌어

24일 오전 9시 반 이건희 전 회장이 복귀한다는 발표와 동시에 삼성그룹의 사내 매체인 ‘미디어삼성’에는 이 회장의 경영 복귀 소식이 떴다. 이 내용은 곧바로 삼성그룹의 공식 트위터인 ‘삼성인(samsungin)’에 이 회장의 복귀 일성(一聲)과 함께 올려졌다.

미디어삼성에는 곧바로 삼성그룹 임직원들의 환영사가 줄을 이었다. “정말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만 삼성인의 가슴을 다시 한 번 고동치게 해주시고 외환위기 때처럼 위기 이후 삼성이 더욱 빛나게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 등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 전 회장이 삼성그룹 전체의 얼굴로 복귀했다. 이 회장의 복귀는 위기론이 일고 있는 삼성을 끌고 갈 든든한 중심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1993년 ‘신경영’으로 삼성그룹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이후 여러 차례 위기를 강조했던 이 회장이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삼성을 이끌지 주목된다. 이 회장의 복귀로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과 2인자였던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의 역할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컨트롤 타워의 부재가 부른 위기론


이 회장은 경영 복귀와 함께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며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고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이는 복귀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한편 최근 급변하는 정보기술(IT) 업계의 변화에 대해 삼성전자가 더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강력한 비전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현재의 대표 제품들이 사라질 것이니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밝힌 점은 앞으로 삼성전자의 혁신과 변화 속도가 빨라질 것임을 시사한다. 이에 따라 바이오 사업과 헬스케어 등 신성장동력 사업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세계 1위 기업을 따라잡는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종자) 전략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TV와 휴대전화, 반도체 모두 후발주자였지만 선발주자의 강점을 재빨리 배워 세계 일류 상품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시장을 창조할 만한 독특한 혁신은 이루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산업과 사회에 미래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주는 ‘비저너리(Visionary·비전 제시자)’의 역할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이 복귀하면서 던진 화두는 이런 비전 제시자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대량 리콜 사태도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삼성전자의 위기의식을 북돋운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고의 기업도 한순간에 휘청거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도요타 사태는 삼성 사장단에도 위기감을 불러일으켰지만 이 회장에게도 큰 충격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이 도요타 사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고 전했다.

사장단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 뒤 명예롭게 퇴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검찰 조사와 함께 불명예 퇴직을 한 이 회장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다.

○ 이재용 부사장과 이학수 고문 주목

이 회장의 경영 복귀는 이재용 부사장의 후계 승계 구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 부사장은 지난해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박람회 ‘CES 2010’에서 제휴사 최고경영자(CEO)들과 직접 교류하는 등 활발한 경영활동을 벌여 왔다. 하지만 아직 42세의 젊은 나이인 이 부사장이 삼성전자와 그룹 전체의 경영을 총괄하기에는 연륜과 경험이 다소 부족해 보인다는 우려도 있었다. 이 회장의 경영 복귀는 이 부사장에게 경험을 쌓을 시간을 벌어주고 외풍을 막아주는 울타리가 되어 줄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이 회장의 퇴진 당시 전략기획실을 해체하면서 함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던 이학수 고문의 역할도 주목된다. 이 고문은 삼성전자 부회장 시절부터 ‘삼성의 2인자’로 불리며 이 회장을 가까운 위치에서 보좌해 왔다. 지난해 말 사면 이후 최근 이 회장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도 이 고문은 늘 이 회장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이 회장을 수행했다. 회장실이 생기면 이 고문도 다시금 ‘삼성의 2인자’ 역할을 하게 될지가 관심의 대상이다.

○ 그룹 조직 확대하나

이인용 부사장은 “이건희 회장은 중요한 의사결정이나 그룹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과 제시 역할을 하지 매일 하루하루의 경영활동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경영 복귀로 삼성전자는 ‘회장실’이라는 별도의 조직을 만들 계획이다. 또 그룹조직을 업무지원실, 브랜드관리실, 윤리경영실로 확대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세 조직이 그룹 경영 전체를 총괄하고 계열사 간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옛 전략기획실의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한 삼성 관계자는 “그룹 조직이 확대 개편된다면 최소한의 인원으로 운영되는 지금의 그룹 조직과 예전의 기획, 재무, 인사를 총괄하던 전략기획실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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