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성장기지 ‘경제자유 구역’]<2>특구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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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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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매력 없는 한국… 중화권에 치이고 필리핀에 밀리고
규제완화-인센티브 항목…스페인 빼면 3곳 공동 꼴찌
폴란드도 안하는 국내 역차별…지역균형 정책도 장애물로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와 글로벌 컨설팅사 모니터그룹이 세계 20개 경제자유구역(FEZ)의 경쟁력을 평가한 결과, 국내 1기 FEZ 3곳(인천, 부산·진해, 광양)은 ‘제조업 중심’ 모델과 ‘지식기반 중심’ 모델 사이에 낀 어정쩡한 모습이었다.

높은 땅값과 임금, 잦은 노동쟁의 등으로 입지와 요소 경쟁력은 경쟁국가에 비해 차별화된 강점이 없었고, 국가 차원의 정책 매력도와 운영 주체의 경쟁력은 최하위권이었다.

그나마 국내 간판 FEZ인 인천은 입지(6위)와 요소(6위) 경쟁력이 비교적 상위권으로 조사돼 정책·운영 경쟁력(15위)만 높이면 선두권 도약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국내 FEZ가 추구하는 지식기반 모델은 입지나 요소 경쟁력보다는 정책·운영 경쟁력이 성패를 좌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국내 FEZ는 단기간에 경쟁력을 높이기 어려운 입지나 요소보다는 정책·운영 경쟁력 향상에 집중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 총체적 ‘바닥권’ 정책·운영 경쟁력

이번 조사에서 국내 1기 FEZ의 정책·운영 경쟁력은 각각 인천 15위, 부산·진해 17위, 광양 19위 등으로 조사 대상 20개 지역 중 ‘바닥권’이었다. 정책수행 지속가능성(공공부채비율, 지방정부 재정자립도, 대외 부채비율 등)의 3개 세부 지표에서만 중상위권으로 분류됐을 뿐 정책 매력도(규제, 인센티브 등), 운영주체 경쟁력(전문성, 효율성)을 평가한 11개 세부 지표에서는 모두 최하위권이었다.

특히 국가 차원의 정책매력도는 세제 혜택 등이 거의 없는 스페인을 제외하면 ‘꼴찌’(공동 17위)였다. 정부 정책이나 제도, 조직 등이 입지와 요소 측면의 약점을 보완하기는커녕 오히려 전반적인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반면 한국의 주요 경쟁 대상인 싱가포르, 홍콩, 두바이 제벨알리프리존(JAFZ)은 나란히 정책·운영 경쟁력에서 1∼3위를 차지했다. 중국 내에서도 후발 주자인 톈진의 빈하이 신구는 인천은 물론이고 자국 내 선발 주자인 선전(5위), 상하이 푸둥(7위) 등을 제치고 정책·운영 경쟁력 부문에서 4위로 도약해 눈길을 끌었다. 입지와 요소(경제활동 인구, 노동생산성 등) 경쟁력에서 인천에 한참 뒤진 폴란드 카토비체(6위), 필리핀 수비크 만(8위), 러시아 칼리닌그라드(9위) 등은 정책·운영 경쟁력 순위에서는 인천을 앞질렀다.

○ 정책의 ‘매력’을 높여라

폴란드 카토비체는 국내외 기업을 가리지 않고 입주 기업에 영구적으로 법인세 40%를 감면해 준다. 중소기업은 감면 혜택이 60%나 된다. 기업 활동을 통해 지역 고용 창출에 기여했다면 2년간의 고용 비용을 소급해 40∼60%의 세금을 추가로 감면해 준다. 종합 경쟁력 순위에서 하위권인 필리핀 수비크 만은 법인세 8년간 완전 면제, 관세 면제 등 ‘매력적인 정책’으로 FEZ가 국가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두바이 JAFZ는 비싼 임금과 토지 비용, 낮은 노동생산성 등으로 요소 경쟁력이 인천(6위)보다 낮은 7위에 그쳤지만 정책·운영 경쟁력은 3위를 차지해 인천(15위)을 크게 앞질렀다. 하지만 국내 FEZ는 정책적 혜택이 외국 기업에 한정돼 있다. 또 외국 기업 중에서도 단순 입주 기업이나 일부 업종은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혜택이 제한적이다. 세제 혜택도 감면 폭은 최대 85% 수준이지만 감면 기간이 최장 7년으로 경쟁 국가보다 뚜렷한 비교 우위를 찾기 힘들다.

○ 목표와 전략부터 새로 짜야

국내 1기 FEZ의 정책·운영 경쟁력이 ‘바닥권’에 머문 것은 △과도한 규제 △구조적인 전문성 확보 한계 △비효율적인 행정서비스 체계 등 대부분의 평가 지표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다. 중국 등 주요 경쟁 국가의 FEZ에서는 오래전 사라진 국내외 기업 간 차별이 한국에서는 여전히 존재한다. 국내 기업의 입주가 사실상 ‘봉쇄’된 상황에서 한국 기업과의 연계를 생각하는 외자기업이 국내 FEZ에 굳이 입주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또 FEZ 지정 및 육성 과정에서 경제 논리보다는 정치 논리가 더 큰 역할을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자유구역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에는 FEZ 지정 및 운영을 통해 ‘지역 간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고 명시돼 있다. FEZ를 성장동력으로 삼아 국가 차원에서 육성하는 경쟁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지역 정서를 고려한 정치 논리가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국내 1, 2기 6개 FEZ는 지역 특성과 역량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저마다 ‘동북아 거점’ ‘글로벌 거점’을 표방하며 현실성이 부족하고 차별성도 없는 목표와 전략을 내세우며 각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FEZ 추진 주체 간 지나친 역할 분산으로 인한 행정적 비효율과 사업 추진력 저하도 정책·운영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현재 중앙정부는 FEZ 제도 입안과 인프라 구축 지원 일부를 담당하고 있고, 지자체는 경제자유구역청장 임명 및 인허가 업무를, 경제자유구역청은 각종 개발 및 운영 관리 업무를 나눠 맡고 있다. 모니터그룹은 “국가 차원에서 국내 FEZ의 성장 목표와 육성 모델을 더 명확히 하는 게 선결 요건”이라고 지적했다.

용지 조성 한창인 광양만국내 1기 경제자유구역 중 하나인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의 신대배후단지 용지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이곳에는 외국인 병원과 주거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사진 제공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
용지 조성 한창인 광양만
국내 1기 경제자유구역 중 하나인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의 신대배후단지 용지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이곳에는 외국인 병원과 주거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사진 제공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
■ 영어로 전화 걸어 투자조건 문의해 보니
中 톈진 즉각 응답… 부산·진해 31단계 거쳐
한국, 대답없이 전화 끊기도…5일간 메일 확인 안해 반송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와 모니터그룹은 세계 20개 경제자유구역(FEZ) 운영주체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e메일과 전화를 활용한 실측을 병행했다.

우선 올해 1월 말∼2월 초에 조사 대상 20개 FEZ에 토지조성 원가, 투자 과정 및 소요 기간 등 5가지 질문을 담은 영문 e메일을 3차례에 걸쳐 보냈다. 응답이 오기까지 걸린 시간과 실제 사업승인까지의 소요 일수 등을 측정하고 답변 내용의 전문성을 평가하기 위한 시도였다.

결과는 각국 FEZ의 경쟁력 순위와 큰 차이가 없었다. 전 부문에서 상위권을 휩쓴 싱가포르는 이 조사에서 최초 응답 메일이 오는 데 하루, 최종 답변이 오는 데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주말 제외). 담당자는 5가지 항목에 대한 상세한 답변과 함께 추가 정보를 얻는 데 필요한 담당자 연락처까지 보내왔다. 반면에 부산·진해와 광양만은 각각 5일 동안 메일을 확인하지 않아 반송돼 왔다. 인천은 4일 만에 최초 응답 메일이 왔다. 6일 만에 온 최종 답변 내용은 인천경제자유구역 홍보 책자에 소개된 내용에 그쳤다.

모니터그룹 홍콩사무소를 통해 각 FEZ에 영어로 전화를 걸어 담당자 인터뷰도 시도했다. 5가지 정보를 얻기 위해 시도한 통화 횟수와 통화 연결이 됐을 때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돌린 횟수를 합산했다. 중국 톈진 빈하이는 한 번에 원스톱으로, 싱가포르는 2회 만에 해결됐다. 톈진 빈하이는 홈페이지에 일대일 메신저 서비스를 개설해 24시간 실시간으로 질문에 답했고, 전화 문의에는 경영전문대학원(MBA) 출신 직원이 상세하게 설명했다. 싱가포르, 폴란드 카토비체,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등도 담당자가 일대일로 응대를 하거나, 자신이 담당자가 아니면 정보를 취합한 뒤 전화를 다시 걸어와 설명했다.

반면 부산·진해는 31회, 인천은 22회, 광양만은 18회 만에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국내의 한 FEZ는 3차례의 영어 질문에 모두 전화를 끊었다가 한국어로 질문을 하자 담당자를 바꿔준 사례도 있었다.

■ 쉬운 자본조달 - 풍부한 인구 - 든든한 재정 외자유치 ‘3박자’

이번 조사에서 경제자유구역(FEZ) 내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와 상관관계가 가장 높은 지표는 ‘자본조달의 용이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20개 FEZ 중 FDI 관련 데이터 확보가 가능한 12개 FEZ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1점 만점을 기준으로 ‘자본조달 용이성’은 상관관계가 0.79나 됐다.

이어 ‘인근 60km 내 거주 인구 수(활용 가능한 생산요소의 인접성 및 집적도 수준)’ ‘지방정부 재정자립도’ 등이 각각 0.69로 뒤를 이었다. ‘노동쟁의로 인한 근로손실 일수’ ‘규제 완화 정도’ 등도 상관관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운영경쟁력과 직결된 FEZ 관련 기관 내 전문인력 비중, 정보 획득까지 소요 절차도 중요한 요소로 꼽혔다. 박영훈 모니터그룹 부사장은 “지표와 조사 대상 지역 수 등에서 대표성에 한계가 있지만 국내 FEZ 발전 전략 수립에 고려해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팀장

배극인 미래전략연구소

신성장동력팀장

▽미래전략연구소

조용우 박용 한인재 하정민

김유영 신수정 기자

▽편집국

박희제 사회부 차장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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