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외평기금 파생상품 거래 6조3000억 손실 논란

  • 입력 2009년 7월 9일 03시 00분


“외환불안 대응, 불가피한 비용”vs“정책판단 오류, 불필요한 손실”

국회 이달중 결산심사 착수…외환정책 적정성 따지기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나성린 의원(한나라당)은 최근 ‘2008회계연도 기금결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이 파생상품 거래로 사상 최대인 6조3000억 원 규모의 손실을 입었다고 밝혔다.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정부가 운용하는 외평기금의 지난해 실적을 따져 보니 파생거래 수입이 5조3025억 원, 파생거래 지급은 11조5768억 원으로 6조2743억 원의 순손실을 입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외평기금으로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이처럼 엄청난 손실을 본 것일까. 이런 손해를 초래한 공무원들을 문책해야 하는 것일까.

○ 불가피한 비용? 불필요한 손실?

정부는 파생거래 손실이 불가피한 정책비용이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외환시장이 극도로 불안한 상황에서 파생시장 개입을 할 수밖에 없었고, 개입도 기금의 이익규모를 고려한 범위 안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정부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을 발행해 마련한 자금인 외평기금을 갖고 현물환 및 선물환 시장에 개입해 외환시장을 안정시킨다. 문제의 파생상품 거래는 당국이 역외선물환(NDF·Non-Deliverable Forward) 시장에 개입한 데 따른 것이 대부분이다. NDF는 뉴욕, 홍콩, 런던 등에 형성된 선물환 시장으로 만기 때 차익만을 사후 정산하는 것이 특징.

2008년 외환시장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혼란 양상이었다. 새 정부 출범 직후 고환율을 용인하는 자세였던 당국은 이후 원화가치가 예상보다 빠르게 떨어지자(원-달러 환율 상승) 여름부터 방향을 틀어 원화가치를 높이기 위한 달러 매도 개입에 나섰다. 특히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환율이 하루에 100원 가까이 급등하는 등 외환시장이 패닉에 빠지자 당국은 현물과 NDF에서 달러 매물을 쏟아내며 대규모 개입을 했다. 하지만 개입에도 불구하고 환율은 계속 올랐고 11월 24일에는 1511원까지 치솟았다. 선물환을 판 상태에서 환율이 올랐기 때문에 당국은 대규모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그나마 12월 들어 개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내면서 연말 종가는 1257.5원으로 떨어졌다.

정부는 만약 NDF 개입을 하지 않았더라면 외환보유액 2000억 달러를 지키지 못했을 것이고 환율은 천정부지로 뛰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개입을 통해 연말 환율을 안정시키지 않았더라면 은행과 기업들의 회계상 손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국가 경제가 파탄에 빠질 수도 있었다는 것. 정부가 외평기금의 손해를 감수한 대가로 국가경제 시스템을 안정시켰다는 해명이다.

○ 적절한 수준의 비밀 감사시스템 필요

외환 전문가들은 외평기금 손실이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에 따른 정책비용임을 인정하면서도 기금의 손익계산서만으로는 정부가 잘한 것인지 잘못한 것인지 판단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거래 명세를 들여다봐야 잘잘못을 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회가 사후 심사를 통해 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외환 관련 정보는 어느 나라나 극비사항이다. 외환보유액의 총량만 공개하지 그 구성 내용은 시시콜콜하게 밝히지 않는다. 우리 정부도 외평기금의 손익계산서만 공개할 뿐 거래 명세는 비밀로 하고 있다. 국회 심사과정에서 중요한 정보가 외부로 흘러나갈 수도 있고, 지나친 심사로 정부의 발이 묶이면 외환시장에서 투기꾼들이 한국 정부를 얕잡아보고 장난을 일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의 외환 개입 정보에 대한 보안을 유지하되 일정 수준의 사후 감사 시스템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홍익대 박원암 교수(경제학)는 “국회가 한정된 사람들만 참가하는 비밀위원회를 열어 정부로 하여금 의문사항에 대해 소명하도록 하는 사후 감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가 결산심사를 한다고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2004년에 원-달러 환율이 계속 떨어지자 당국은 적극적으로 매수 개입을 했다. 하지만 그해 파생거래 손실이 2조2000억 원에 이른 것으로 나타나자 국회는 정부 측에 재발 방지 대책과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 정부는 최중경 당시 국제금융국장을 해외전보 조치하고 추가적인 NDF 거래를 하지 않으며 이미 가지고 있는 계약도 점차 정리하기로 국회와 타협했다. 한 선물회사의 외환 전문가는 “2004년 이후 당국이 NDF 매수 포지션을 정리하지 않았더라면 지난해 이처럼 대규모 손실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도 이런 점을 인식해 여야 간사의 논의를 거쳐 적정한 선에서 정부로부터 비공개 보고를 받을 예정이다. 나성린 의원은 “정부가 자료를 배포한 뒤 현장에서 회수하고 민감한 내용은 말로 설명을 듣는 선에서 결산심사를 할 것”이라며 “현재 국회 파행으로 개시도 안 된 상태지만 이달 중 결산심사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결국 지난해 외환당국자들이 능력을 발휘한 애국자였는지, 아까운 국민의 돈을 무능하게 날려버린 것인지는 국회의 결산심사 후에야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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