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내수 기관차’에 올라탄 한국기업들 쾌속질주

입력 2009-07-04 02:52수정 2009-09-22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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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시장 車판매 70% 껑충
현대차 “식사시간도 줄여 풀가동”
가전제품 LG, TV판매 70%↑… “우리 매장 경제위기 못느껴”
휴대전화 月가입 1000만명씩 늘어… 삼성 점유율 2년새 배로
석유화학 지진복구-인프라 투자 힘입어 1분기 실적 큰폭 상승

《지난달 24일 오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동북쪽으로 50km 떨어진 베이징현대 제2공장에서는 중국형 아반떼 ‘웨둥(悅動)’의 20만 대째 생산을 축하하는 깜짝 이벤트가 열렸다. 10여 명의 중국인 근로자들은 잠시 일손을 놓고 ‘200,000’이란 플래카드가 붙어 있는 차량 앞에 모여 즉석 기념사진을 찍었다. ‘웨둥 파이팅(悅動加油)’이라고 적힌 붉은 머리띠에선 진한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이 광경을 지켜본 베이징현대 본사 관계자는 “직원들이 예고 없이 자발적으로 벌인 일이라 우리도 깜짝 놀랐고 국적을 넘어선 뜨거운 유대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웨둥은 올 들어 5월까지 중국에서만 9만여 대가 팔려 이미 지난해 전체 판매량(8만6000대)을 넘어섰다. 요즘 중국에서 팔리는 220여 가지 국내외 자동차 중 가장 잘 팔리는 브랜드다. 지난해 540만 대 수준이었던 중국의 자동차 수요는 금융위기 속에서도 올해 예상치인 570만 대를 훌쩍 넘어 670만 대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현대의 급성장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을 발판으로 삼아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경제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글로벌 위기에 따른 전 세계적인 수요 급감으로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들은 인력을 감축하고 생산을 줄였다. 하지만 현대차와 LG전자, 삼성전자 등 한국의 대표 기업들은 오히려 이 시장에서 투자를 늘리고 영업력을 강화해 ‘중국 격전’의 승자로 올라서고 있다.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에 진출한 자동차 전자 제약 유통 식품 의류 엔터테인먼트 등 7개 업종의 한국 기업 공장과 매장을 취재하면서 ‘위기에서 기회를 찾은’ 한국 기업들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예상을 뛰어넘은 중국 특수(特需)

베이징 비즈니스의 중심지인 차오양(朝陽) 구의 LG전자 가전매장. “가장 잘 팔리는 모델을 소개해 달라”고 하자 매장 직원인 저우웨(周悅) 씨는 9490위안(약 180만 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은 42인치 액정표시장치(LCD) TV를 가리켰다. 그는 “고객층은 화이트칼라가 대부분이고 중국 기업에 다니는 임원들이 주로 좋아한다”며 “그나마 LG전자 제품 가격이 아주 비싸지는 않아 글로벌 브랜드 중에서 인기가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요즘 이 매장에서는 TV가 한 달에 80대 정도 팔리지만 춘제(春節·중국 설)나 노동절 등 명절이 낀 달은 300대까지도 나간다. 저우 씨는 “경제위기가 우리 매장에선 별 영향이 없는 것 같다”며 “작년보다 매출이 30%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올 1분기(1∼3월) 중국 시장에서의 TV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70% 이상 성장했다.

중국 정부의 소비진작책은 일단 자동차와 가전 분야에 집중돼 있지만 그 효과는 전방위적으로 퍼져가고 있다. 한미약품의 중국법인인 북경한미의 매출액은 2005년 1억5000만 위안에서 올해 4억5000만 위안(약 855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경한미 송철호 부회장은 “중국을 임가공 기지로 삼아 제3국으로 수출하는 기업들은 이번 금융위기에서 수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우리처럼 중국 내수를 직접 노리는 기업들은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중국의 아동용 제약 시장을 석권했다. 중국 정부의 ‘1가구 1자녀’ 정책에 따라 요즘 중국인들이 자녀에게 쓰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는 점을 일찌감치 포착한 것이다. 중국에선 아직도 매년 약 2000만 명의 신생아가 태어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업계의 1분기 실적이 크게 개선된 것도 중국 경기부양 정책의 영향이다. LIG투자증권은 최근 “중국의 인프라 투자, 지진 복구, 농촌 사업 등에는 석유화학제품이 핵심 소재”라며 “강한 중국 수요는 올 하반기 호남석유, SK에너지 등 국내 기업들에 지속적인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중국 휴대전화시장에서 2007년만 해도 11.5%에 불과했던 점유율을 올 4월 22.5%로 끌어올렸다. 중국은 매달 이동통신 가입자가 1000만 명씩 늘고 있지만 아직도 휴대전화 보급률이 50%에 못 미쳐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크다. 중국 특수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것은 게임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네오위즈게임즈 상하이법인의 최방글 팀장은 “중국시장의 게임인구가 5000만 명이 넘어 한국 전체 인구보다도 많다”고 말했다.

○ 위기 때 투자가 중국 특수 가져왔다

중국에서 사업을 벌이는 한국 기업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현지 자산시장의 거품 붕괴와 인건비 상승, 글로벌 경제위기 등으로 큰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세계 경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던 지난해 말 이후 중국 정부가 4조 위안(약 760조 원)의 경기부양책을 추진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민간소비가 살아나고 증시와 부동산 등 자산가격이 회복되면서 중국 경제가 올해와 내년에 걸쳐 ‘V’자 형태로 회복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연구기관들은 중국의 경기부양책이 성공할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이 8%에 이르고 민간소비 및 산업생산은 두 자릿수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한다. 골드만삭스는 1일 “산업생산, 소매매출, 고정자산투자 등의 통계를 봤을 때 올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8% 이상 성장하고 디플레이션 우려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물론 한국 기업들의 성공에는 중국 경제의 자생적 회복 외에도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공격적인 투자가 주효했다. 현대차는 경쟁 업체들이 생산을 크게 줄이는 와중에도 공장 가동률을 오히려 높였고, LG전자도 중국 내 마케팅 비용을 두 배로 늘렸다. 특히 금융위기의 타격을 상대적으로 덜 받은 내륙지역 및 고소득층에 영업력을 집중한 것이 효과를 봤다.

베이징·상하이=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가전하향<家電下鄕·구매 보조금> - 이구환신 <以舊換新·교체 보조금> 내수연료 떨어지면…
“정책 언제 바뀔지” 우려 여전▼

한국 기업의 중국시장 공략은 시기상으로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우선 중국은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000달러를 넘어서며 내수시장이 성숙기에 처음으로 진입했다. 당시 국제경제 여건이나 환경이 달라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한국도 1980년대 중반 1인당 GDP 3000달러에 도달하면서 소비시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바 있다. 중국 정부가 내놓은 산업 진흥책과 다국적기업들과의 경쟁 환경, 노사문화 등도 한국 업체들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제3세대(3G) 통신서비스를 본격 시작하기로 결정해 앞으로 중국 시장에서 휴대전화 교체 수요가 쏟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일부 시작한 디지털 TV방송도 조만간 모든 방송으로 확대키로 했다. 모두 한국 기업이 특별한 강점을 갖고 있는 분야다.

얼마 전에는 중국 정부의 가전하향(家電下鄕·가전제품을 구매하면 보조금을 주는 정책) 대상이 ‘2000위안(약 38만 원) 이하’에서 ‘3500위안(약 66만5000원) 이하’의 제품으로 확대되면서 가전 시장의 최대 격전지인 32인치 TV 판매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베이징 퉁저우(通州) 구의 가전쇼핑센터에서 일하는 쑹궈후이(宋國輝) 씨는 “한국 기업들이 올해 신제품을 공격적으로 내놓으면서 다른 경쟁업체들이 주춤하는 것 같다”며 “중국 소비자들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 기업들이 갖지 못한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낡은 제품을 새 제품으로 바꿀 때 보조금을 주는 이구환신(以舊換新) 정책도 얼마 전 추가로 도입했다.

현대차는 생산량을 더욱 늘리기 위해 1시간인 공장 식사시간을 40분으로 줄였는데 이는 우호적인 노사문화 덕분에 가능했다. 베이징현대 제2공장 김현수 부장은 “한국의 현대차는 생산량이나 생산차종을 바꿔야 할 때 일일이 노사협의를 해야 하지만, 이곳에선 공회(工會·노동조합)의 경영 간섭이 일절 없다”며 “최근 예기치 못한 수요증가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중국식 노사관계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중국 특수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불안해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중국 사업의 리스크를 묻자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당국의 태도가 언제 어떻게 갑자기 달라질지 알 수 없는 점이 가장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현재의 경기부양책이 다시 긴축 기조로 돌아서면 현지 진출 기업들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은 거대시장을 놓고 미국 유럽 일본 대만 등 다른 다국적기업들과의 경쟁이 격화될 가능성도 크다.

아직 한국 기업들의 중국 내수시장 진출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그만큼 성장 여력이 크다는 뜻이다.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에서 제3국 수출의 기반이 되는 중간재의 비중이 75%가 넘는 반면 최종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5% 안팎에 불과하다.

베이징=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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