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Dream]현장에서/불황이 일깨워준 ‘집다운 집’

  • 입력 2009년 5월 28일 02시 44분


서울 중구 신당동 남산자락에 들어선 남산포레스트하우스는 남산 속에 파묻혀 있는 듯한 조망이 특징이다. 앞에 가리는 건물이 없고 차 소리도 들리지 않아 남산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이 타운하우스에선 다른 주택에 없는 파격적인 설계를 찾아볼 수 있다. 각 가구마다 남산이 잘 보이는 곳에 33∼182m² 넓이로 설치된 목재 데크 공간이 바로 그것이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은 데크에서 산의 풍경을 즐기며 차를 마시거나 새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을 수 있다. 더욱이 이 데크는 공급면적에서 제외된 서비스 공간이다. 3.3m²당 2000만∼2500만 원선인 이 집의 분양가를 고려하면 이 공간의 값어치만 2억 원이 넘는 셈이다.

1971년부터 살던 집터에 이 타운하우스를 지은 박종휴 남산포레스트하우스 회장은 “개발 이익을 따진다면 이런 공간은 절대 나올 수 없다”면서 “불황에도 팔릴 집은 어떤 걸까 고민하다 보니 100년을 살아도 질리지 않는 집, 자녀와 손자가 이어가며 살만한 좋은 집을 지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다른 건설업체인 피데스개발이 대전 도안신도시에서 공급하는 아파트 파렌하이트는 설계에서 최종 시공까지 여자 디자이너와 주부를 참여시켜 이들의 요구를 충실하게 반영했다. ‘대리석 아트월을 빼고 그 돈으로 아이들 방의 붙박이장을 설치해 달라’, ‘아이들이 마음껏 낙서할 수 있도록 한쪽 벽에 화이트보드를 넣어 달라’, ‘화장대 자리에는 어둡고 그늘지는 천장 조명 대신 얼굴에 직접 쏘아주는 분장실용 조명을 달아 달라’ 등 주부들의 요구는 그동안 남자 설계자들이 상상하지 못하던 것들이었다.

설계도 파격적이어서 방과 방 사이, 방과 거실 사이 모든 벽이 가변형 벽체다. 가족 수가 줄거나 늘어도 이사 갈 필요 없이 설계를 바꿔 오래도록 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벽지를 뜯어내고 설계를 바꾼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미 설계승인까지 받아 완공된 공간을 다시 승인받아 고치기도 했다. 피데스개발의 김희정 연구센터 소장은 “지난해 말 분양할 수도 있었지만 시기가 좋지 않아 집을 더 견고하게 고치면서 분양시기를 조정했다”며 “불황이 더 좋은 집을 짓는 방법을 고민할 시간을 준 셈”이라고 말했다.

부동산시장이 살아나면서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청약과열 양상까지 빚고 있지만 그 외의 지역에서는 여전히 미분양 물량이 많이 남아있다. 이제는 줄서서 아파트를 청약하는 시대가 아닌 만큼 예전처럼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설계와 마감재로는 수요자들의 마음을 끌 수 없다. 실제 들어가 살 아파트에는 있지도 않은 각종 전시품으로 모델하우스를 ‘화장’하고 ‘단기간 보유만 해도 돈이 된다’는 식으로 수요자를 현혹하는 예전의 마케팅 방식도 더는 통하지 않는다. 불황을 계기로 일부에서 시작된 아파트 상품 자체에 대한 ‘정직한 고민’이 다른 시행, 시공사로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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