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수리할 수 있다

  • 입력 2009년 5월 23일 02시 59분


■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 특별기고

“경제의 두 축인 실물과 금융, 리듬 맞추면 위기극복 가능
한국도 ‘창조적 파괴’ 통해 고부가산업으로 옮겨가야

자본주의의 멸망을 바라는 이데올로그들은 다시 실망할 것이다. 최근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졌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번 위기는 한 세기 안에 세 번째로 일어난 전 세계 차원의 위기다. 그럼에도 자본주의체제 자체의 위기는 아니다. 1930년대, 1970년대와는 달리 자본주의를 대신할 어떤 대안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 1930년대 유럽 중국 일본에 대두한 파시즘이나 1970년대 유럽 아시아에 퍼져나갔던 사회민주주의는 이제 대안이 되지 못한다. 자본주의는 매우 불완전하다. 하지만 모든 문명권에서 인류를 빈곤에서 구출한 것 역시 기정사실이다.

문제는 고장 난 시스템을 고치는 일이다. 이 일은 단순하지 않다. 고쳐야 할 대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전제로 한다. 우리는 지금 두 가지 다른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하나는 익숙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것이다.

첫 번째 위기는 과거에 종종 경험했던 것이다. 이 위기는 사람들이 시대에 뒤진 경제활동에서 미래의 직업으로 옮겨가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옛것을 버리고 새것으로 향한다는 의미에서 ‘창조적 파괴’라고 불리는 이 과정은 자본주의의 원동력이다. 이 이행이 개인에게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하기 위해 어느 정도 위험의 집단화, 즉 국가가 개인의 피해를 대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실제 1970년대 서구 공업국에서 그랬다. 석탄 제철 섬유 조선 산업이 더 이윤이 많은 공장 조건을 찾아 주로 아시아와 남미로 이동했다. 국가는 이런 이행과정을 잘 관리함으로써 더욱 고이윤이 창출되는 경제구조를 만들고, 더욱 관용이 있는 사회를 만들어 자본주의를 구했다. 이를 통해 서구와 아시아는 모두 혜택을 봤다. 유럽과 미국은 새로운 서비스 산업을 개발했고 한국 중국 태국 대만은 공업의 질을 한 단계 높였다.

같은 시나리오가 현재 미국 자동차와 일부 금융 산업에서 적용되고 있다. 자동차 제조는 북미에서 한계수준에 도달했다. 서유럽의 경쟁력도 아시아보다 약하다. 서구의 금융부문은 실물경제의 수요에 비해 너무 커졌다. 무엇보다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독점적 지위를 잃는다면 거대한 금융 중심지가 아시아에 등장할 것이다. 북미와 유럽 국가는 신세계를 잉태하는 데 따른 고통을 줄이기 위해 구세계에 마취주사를 놓아야 할 처지다.

여기까지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국도 창조적 파괴의 과정에서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서구에서 넘어온 산업으로 혜택은 보겠지만 동시에 단순한 산업을 다른 아시아 국가에 넘겨줘야 한다. 여기서 한국의 전략은 기존의 것을 보호하기보다는 생명과학이나 서비스산업과 고부가가치 신산업에 더 많은 힘을 기울이는 것이다.

우리에게 새로운 현재의 세계적 금융위기는 과거보다 복잡하다. 금융시장이 실물경제에서 유리된 채 괴물처럼 통제하기 힘든 대상이 돼버렸다는 것이 이번 위기의 직접적 원인이다. 우리는 실물경제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대강 안다. 실물경제는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한 모델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경제학자나 정부가 상당 정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누구도 통제하기 힘든 자신의 고유한 법칙에 따른다. 주가는 기업 실적과 관계없이 투자자의 전략에 따라 오르내린다. 투자자의 선택은 주가에 반응하는데 그 주가는 이미 투자자의 전략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이처럼 금융시장은 실물경제로부터 상당히 자유롭다. 물론 실물경제와 금융부문의 이격(離隔)이 항구적인 것은 아니다. 둘은 결국 서로 일치하는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그때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금융자본의 움직임을 수학적 모델에 따라 통제하려는 시도는 지금까지 모두 실패했다. 실제의 금융법칙은 프랑스계 미국인 경제학자 브누아 만델브로의 정의에 따르면 ‘난폭한 우연(Wild Randomness)’이다.

그렇다고 금융 자본주의를 배제하고 실물 자본주의만으로 살 수는 없다. 지난 25년간 거의 모든 세계가 혜택을 본 엄청난 경제성장은 금융혁신, 오늘날은 독성 자산으로 불리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그로 인해 혜택을 누렸던 주택저당채권의 금융증권화(securitization) 같은 금융혁신에 의해 가능했다.

지금 위험에 빠졌고 그래서 우리가 규제해야 할 것은 금융자본주의 그 자체가 아니라 금융의 과잉이다. 합리적인 선(만델브로 교수의 말을 빌리면 ‘온건한 우연·Mild Randomness’의 범위)에서 금융과 실물경제의 이격을 봉합할 수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

라마 콘트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경제학 교수는 금융폭풍이 닥치기 전에 각국 정부에 경고를 발할 수 있는 세계적 금융관측소의 설립을 제안했다. 그러나 투기적 전략으로부터 예금자 주식보유자 은행 보험회사를 보호할 권한과 의무는 세계적인 금융기구가 아니라 각국 정부가 해야 하는 상호 불일치가 계속될 것이다.

금융을 규제하는 최선의 방식은 금융시장을 실물경제와 재결합하는 것이다. 위기는 경제주체, 즉 기업가 근로자 소비자 투자가가 자본주의의 두 축인 금융과 산업이 다시 동일한 리듬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믿을 때 끝날 것이다.

자본주의는 구체적 성과를 낼 때에만 존립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인기가 없다. 특히 지식인 사이에서 그렇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가 얼마나 좋아할 만한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효율적인 것인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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