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직원-고용사-파견사 3자가 웃는 이런 모델도…

  • 입력 2009년 3월 16일 18시 57분


김희정(30)씨.
김희정(30)씨.
김영희(27)씨.
김영희(27)씨.
"파견 사원도 정규직으로 고용합니다" 상용형 파견회사 '엘마르 코리아'

지난달까지 미쓰이스미토모은행(三井住友銀行) 서울지점에서 파견 직원으로 1년간 일했던 김희정(30)씨는 다음달 출산을 앞두고 있지만 재계약을 걱정하지 않는다. 은행에서는 비정규직 사원으로 파견되어 일했지만 인력파견업체 '엘마르 코리아'의 정규직 사원이기 때문이다. '엘마르 코리아'는 김씨 후임으로 자사 사원을 새로 파견했고 김씨는 본사로 복귀해 근무하다 산전후휴가를 갈 계획이다.

김씨는 "전에 다니던 파견업체에서는 임신과 동시에 계약이 종료되는 것이 당연했다"며 "임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고 출산 후에도 돌아올 직장이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씨가 다니는 '엘마르 코리아'는 일본계 인력파견업체로 비정규직 파견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고용을 하고 있는 특정 노동 파견 사업체다. 한국의 등록형, 모집형 파견과는 다른 일본만의 파견 형식으로 상용(常傭)형 파견이라고도 한다. 이 회사는 2005년 한국에 진출했으며 소위 '오피스레이디'라 불리는 단순 사무직 여성을 파견 대상으로 하고 있다.

등록형, 모집형 파견은 사용 업체의 고용 계약이 종료되면 파견 업체의 고용 계약도 한꺼번에 종료된다. 반면 상용형 파견은 사용 업체의 고용 계약과는 별도로 파견 업체에 계속 고용이 보장된다.


▲동아일보 우경임 기자

● 파견 근로자 고용안정성 높아

김영희(27)씨는 파견 근로자로 미쓰비시도쿄UFJ은행(三菱東京UFJ銀行) 서울지점에서 1년 3개월째 근무하고 있다. 김씨는 "보통 파견회사는 파견을 보낸 후 갈등이 발생해도 전혀 상관하지 않는 데다 간식비 등을 떼어먹기 일쑤였다"며 "정규직 사원으로 소속감도 생기고 사후 관리도 책임 져 주니 일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엘마르 코리아'는 자사 직원들의 인사 관리, 필요한 기술 교육, 업무 적응 상담을 전담하며 평가에 따른 내부 승진 체계도 갖추었다. 따라서 사용 업체는 인력 관리나 비용 문제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파견 근로자는 고용이 보장되는 상생이 가능해진다. 현재 JMAC KOREA, 미쓰이스미토모 은행, 미쓰비시도쿄UFJ 은행 등 주로 일본 기업에 인력을 파견하고 있다.

고용 안정성은 인력의 질과 생산성으로 연결돼 사용회사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엘마르 코리아' 직원을 고용했던 A업체는 "다른 파견 회사를 이용하면 인사 관리를 전부 담당해야 해서 신경이 많이 쓰였으나 그런 부담이 줄었고 근태 등 파견 사원의 책임감도 월등하다"고 만족했다. 또 다른 B업체는 "파견 사원의 계약만료로 인한 인수인계도 동일 회사 사원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업무의 연속성이 보장된다"고 평가했다.

● 사용 업체 만족도 높아 장기 계약 늘어

'엘마르 코리아' 사원의 파견기간도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 한다. 2008년 상반기 기준, 평균 파견 기간은 6개월 미만이 3.3%, 6개월 이상 1년 미만이 10.1%, 1년 이상 2년 미만이 76.6%였다. 반면, 노동부가 조사한 2008년 상반기 파견근로자 현황을 보면 전체 파견근로자의 57.8%가 파견기간 6개월 미만, 파견기간 6개월 이상 1년 미만이 22.6%, 1년 이상 2년 미만이 19.6%였다. 특히 3개월 미만이 36.1%나 차지해 파견 근로자들이 고용 불안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엘마르 코리아'는 다른 파견 업체들 보다 고용 기간이 긴 데다 계약 기간 만료 후 사용 업체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도 높다.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인력의 질만 보장한다면 고용 기간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물론 고정 인건비가 높다 보니 이익이 많이 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인재파견협회 자료에 따르면 파견업체가 파견근로자 임금에서 평균적으로 취하는 이윤율은 3.2% 정도지만 '엘마르' 일본 본사는 1.2% 정도다.

그러나 이윤을 적게 남기고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 이러한 손해를 상쇄한다는 분석이다. 장기적으로 인력의 질이 높아져 고객 회사의 충성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엘마르 코리아' 정문철 이사는 "처음에 1명을 고용했던 사용 회사가 지금 10명까지 고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 한국에는 왜 도입 안 될까?

노동부는 13일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추진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에 대해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반대하고 나섰다. 노동계는 정규직 전환이 요원할 것이라는 이유에서, 경영계는 어려운 경제 현실을 이유로 들었다.

그렇다면, '엘마르 코리아'처럼 파견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사용 회사는 고용 유지 부담을 덜 수 있는 '상용형 고용'이 왜 한국에는 없을 것일까? 파견이 종료되어도 사원을 계속 고용하기 힘들 정도로 영세한 업체들이 난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상용형 고용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파견 업체들이 규모가 작다 보니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노동부는 파견회사보다는 사용회사에서 직접 고용하도록 장려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국HR서비스산업협회 남창우 사무국장은 "상용형 파견은 파견업체의 고정 비용 부담이 큰 데다 사용회사가 파견회사에 경비 절감만을 요구하는 이상 정규직 고용은 어렵다"며 "정부 지원금을 사용회사가 아닌 파견회사에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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