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사의 대박 마케팅 베껴라”

  • 입력 2009년 3월 13일 02시 57분


경영난 글로벌기업 본사

광고 등 벤치마킹해 재미

“우리는 지금 한국식 마케팅을 ‘벤치마킹’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서울 중구 남대문로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 소니 디지털렌즈교환식(DSLR) 카메라 ‘알파900’ 시리즈 첫 공개 현장에 참석한 소니 본사 디지털카메라 사업부 가네코 가쓰유키 마케팅 본부장은 신제품 홍보 대신 한국식 마케팅 칭찬에 열을 올렸다.

한국 지사인 ‘소니코리아’에서 활용하는 마케팅 기법을 일본에 적용해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마케팅 ‘역수출’ 시대

소니 한국 지사의 마케팅 주제는 바로 전문성과 작가주의. 고급 카메라일수록 ‘특별함’을 추구하려는 고객이 많다는 것을 파악한 한국 지사는 여러 각도에서 촬영할 수 있는 화면(틸트 액정표시장치) 구성 등 기술력을 앞세웠다.

친근함과는 정반대인 신비로움을 주기 위해 ‘알파 카메라=남자의 신비, 남자의 모험’이라는 주제로 배우 소지섭 씨를 모델로 광고를 제작했다. 덕분에 평균 4%대에 머물던 소니 카메라의 시장 점유율은 20% 가까이 높아졌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가네코 본부장은 한국식 마케팅을 즉각 도입했다. 모델 역시 소지섭 씨와 비슷한 이미지인 그룹 ‘V6’의 멤버 오카다 준이치 씨를 내세워 자세부터 표정까지 그대로 연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5%에 불과했던 일본 디지털 카메라 시장 점유율을 12%까지 올릴 수 있었다.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필립스도 최근 한국식 ‘온라인 마케팅’을 수입했다. 필립스 한국 지사인 ‘한국필립스전자’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상품 판매에 도움을 준다는 생각으로 지난해 30, 40대 주부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와 온라인 쇼핑몰을 필립스 지사 중 최초로 만들었다.

온라인을 통해 제품 정보나 신제품 홍보를 펼친 결과 지난해 목표치 매출의 4배가 올랐다. 한국의 성공사례를 접한 본사는 올해 전 세계 지사 고객들을 관리할 통합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한국필립스전자 마케팅팀 박선영 과장은 “전략 수출 이후 본사와 커뮤니케이션 빈도가 늘었다”고 말했다.

○아줌마 마케팅부터 캠페인까지

마케팅 수출은 공익 캠페인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산요 한국 지사인 ‘산요코리아’는 2007년 방수카메라 ‘CA’ 시리즈를 내놓고 ‘물’과 관련된 캠페인을 통해 홍보하기로 결정했다. 환경운동연합과 ‘수중 생태계 보호’ 캠페인을 펼친 산요 한국 지사는 감시단에 자사 카메라 15대를 기부하고 수중 생태계 사진전을 열었다.

이후 일본 본사가 캠페인을 수입해 지방자치단체와 캠페인을 벌였다. 일본 카메라 브랜드 ‘올림푸스’ 역시 대장암을 비롯한 소화기 암의 조기 진단을 강조한 한국 지사의 캠페인 ‘체크 앤드 스마일’을 본 후 이를 벤치마킹해 ‘브레이브 서클’이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한국 지사 벤치마킹 붐은 경기 불황을 맞아 글로벌 기업들이 지사와의 관계에 있어 ‘자존심’을 버린 것으로 해석된다. 산요코리아 마케팅팀 김지웅 부장은 “그간 글로벌 기업들은 무조건 제품을 수출하는 데만 중점을 두었다”며 “지사보다 못한 판매에 본사 스스로 자존심을 버리고 지사의 전략을 배우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니코리아 배지훈 프로덕트 매니저는 “한국의 경우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하는 ‘프로슈머’ 성향이 강하고 온라인 커뮤니티가 활발해 소비자들의 입맛이 시시각각 변한다”며 “이를 좇는 한국 지사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다양한 마케팅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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