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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3월 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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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정부의 양도소득세 면제 및 감면 조치가 발표된 뒤 경기 고양시의 미분양 아파트 매입을 저울질해 온 회사원 정모 씨(42)는 고심 끝에 이 아파트 매입을 포기했다. 10여 년 전 외환위기 직후엔 경기 용인시의 미분양 아파트를 사서 2년 만에 시세차익 1억 원을 남겼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정 씨는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비싸고 경제상황도 불안해 사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서울을 제외한 지역의 신축 및 미분양 아파트에 대한 양도세 감면 카드를 내놓자 수요자들의 문의가 크게 늘어나는 등 미분양 시장이 반짝 활기를 띠는 조짐이 보였다. 하지만 인천 청라지구 등 일부 지역의 중소형을 빼면 실제 계약으로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다.
이런 상황은 1998년 양도세 감면 조치가 발표된 뒤 6개월 만에 10만여 채이던 당시 전국 미분양 물량의 50∼60%가 팔려나갈 정도로 수요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분위기와 큰 차이가 있다.
서울을 제외한 지역의 신축 주택(미분양 포함)을 매입한 뒤 5년 안에 되팔면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은 양도세를 60% 감면받고 나머지 지역은 100% 면제받게 된다.
○ 분양가 비싸 수요자들 주저
경기 용인시 성복동에서 미분양 아파트를 팔고 있는 A건설사의 모델하우스는 요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지난달 용인이 양도세가 100% 면제되는 지역으로 발표되자 문의전화가 한때 두 배 이상 급증했지만 거래는 좀처럼 성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대책 발표 후 한 달 가까운 기간에 실제 계약 건수는 미분양 물량 1500채 중 60채(4%)에 그쳤다. A건설사 관계자는 “전화는 꾸준히 걸려오는데 돈 들고 와서 계약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의 강력한 수단으로 꼽혔던 양도세 면제 및 감면 대책이 나왔는데도 시장의 반응이 신통치 않은 것은 ‘고(高)분양가’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용인시 일대의 미분양 아파트는 현재 3.3m²당 분양가가 1460만∼1500만 원선이지만 입주한 지 2년 안팎인 주변 아파트는 3.3m²당 1000만∼1100만 원 선에서 거래된다. 양도세가 60% 감면되는 고양시 미분양 아파트 분양가는 주변 시세보다 1억∼2억 원가량 비싸다.
외환위기 때는 미분양 아파트의 분양가가 싸 가격의 매력이 컸다. 당시 용인시 성복동 LG빌리지 3차 173m²(52평형) 분양가는 3억300만 원으로 3.3m²당 580만 원에 불과했다. 주변 시세보다 채당 2000만 원이 낮아 가격 상승 여력도 있었다.
○ 가격 추가 하락 우려도 작용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과 경기침체 가속화 등으로 지난해 하반기 큰 폭으로 떨어졌던 부동산 가격이 또다시 급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점도 미분양 아파트의 거래를 막는 요인이다.
실제로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국내 증시가 폭락했던 지난해 10월부터는 서울 강남구의 아파트 값도 추락했다. 지난해 7∼9월 0.3∼0.5%대이던 하락률이 금융위기가 확산된 10∼12월에는 1.22∼2.57%로 커졌다. 서울 아파트 값도 지난해 7∼9월엔 평균 0.37∼0.55% 하락하다 10∼12월에는 1∼2%대로 더 떨어졌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연구실장은 “양도세 감면 혜택이 똑같이 적용되는 신축주택 분양을 기다리는 대기 수요자가 많은 것도 미분양 아파트가 안 팔리는 이유”라며 “무엇보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나 확신이 없는 게 가장 큰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