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뛴다]지구촌경영 선언…“삼성, 세계인 위해 만듭니다”

  • 입력 2009년 2월 16일 02시 59분


《“이제는 ‘어느 나라에서 만드는가(made in)’는 의미가 없어지는 반면 ‘누가 만드는가(made by)’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1997년 발간된 자신의 에세이집에 실린 ‘이제는 지구촌 경영’이란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국산 제품 만들기가 한국 기업의 지상과제였지만 이제는 세계 분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과제가 됐다는 설명이었다. 삼성그룹은 이 같은 ‘질적(質的) 국제화’를 추진하며 세계 곳곳에서 ‘삼성이 만들면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왔다. 삼성 관계자들은 “그야말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다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수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삼성의 해외 매출이 그만큼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얻어진다는 의미이다.》

“초일류 회사가 살 길” 질적 국제화로 경쟁력 갖춰

○ 삼성의 끝없는 해외 매출, 지구가 좁다

그룹의 수출 창구 역할을 오랫동안 담당해왔던 삼성물산은 세계 42개국에 90여 개의 거점을 확보하고 있다.

삼성물산 측은 “요즘에는 삼성 계열사들이 직접 해외에 진출하기 때문에 삼성물산도 비즈니스 구조를 무역 중심에서 사업 중심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며 “이에 따라 최근 핵심 사업 분야를 에너지, 산업소재, 물자 및 기계로 재편했다”고 말했다.

특히 성장잠재력이 큰 인도 아프리카 지역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관련 해외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고 삼성물산은 덧붙였다. 최근 인도 지사를 법인조직으로 전환했고 아프리카 북부의 알제리에도 지점을 새로 개설했다는 것이다.

또 태양광 발전사업, 바이오 디젤 원료사업, 스테인리스 가공사업 등에서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보유해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고 삼성물산은 밝혔다. 2007년 그리스에 태양광 사업을 위한 현지법인을 설립했고 유럽 미국 캐나다 중국 등에서도 태양광 발전사업을 벌이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엔지니어링도 시장 다변화, 상품 다각화를 꾸준히 추구해 지속적 성장 기조를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엔지니어링은 석유화학 정유·가스 산업설비 환경플랜트의 타당성 검토, 설계, 기자재 조달, 시공, 시운전에 이른 전 과정을 수행해 최적의 품질과 가격으로 플랜트를 제공하는 서비스산업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의 한 임원은 “기존 주요 고객인 사우디아라비아 태국 멕시코 인도 등에서 독립국가연합(CIS) 북아프리카 중남미로 시장을 넓히고 기존 석유화학 중심에서 정유 가스(LNG) 철강 발전 등 미래 유망 분야로 다각화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방침에 따라 이 회사의 해외플랜트 부문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37%에서 지난해 73%로 급증했고 올해는 80%를 넘길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엔지니어링 측은 “지난해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수주 5조8000억 원, 매출 3조2000억 원, 영업이익 2670억 원이란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 것은 해외플랜트 부문의 매출 증가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정보통신서비스 기업인 삼성네트웍스도 글로벌 사업의 전체 매출 대비 비중을 지난해 21%에서 올해 2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스리랑카 행정망 구축사업, 베트남 정보기술(IT)대학 설립 같은 성공적인 해외사업을 더욱 발굴해 IT 솔루션의 글로벌 시장을 크게 넓히겠다는 의지이다. 이 회사의 그룹1사업부장인 김대희 상무는 “‘IT한류(韓流)’를 이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최고의 글로벌 비즈니스 파트너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삼성의 수출 길은 ‘초일류 기업’을 향한 길

삼성 내부에서 ‘석유화학제품의 수출 첨병’으로 불리는 삼성토탈은 지난해 매출 5조3000억 중 3조7000억 원(69.8%)이 수출 실적이다. 그만큼 수출 지향적 기업이란 의미이다.

삼성토탈 측은 “합성수지 매출의 65% 이상이 수출이고 중국의 음료수 병뚜껑 소재 시장에서 점유율(50%) 1위이며 중국의 소형가전 소재 시장에서도 1위”라고 설명했다.

삼성토탈은 업계 최초로 ‘모바일 오피스(mobile office·움직이는 사무실)’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수출 담당 영업사원이 월요일 담당 지역으로 출국해 거래처를 방문하며 고객밀착형 영업활동을 한 뒤 금요일 귀국하는 방식이다.

‘모바일 오피스’는 삼성토탈이 글로벌 불황 속에서도 시장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게 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70억 달러 수출탑을 수상한 삼성중공업은 해양 분야의 대표적 성장 엔진인 ‘드릴십’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자랑한다. 드릴십은 북해 지역의 열악한 해상 조건을 극복하고 원유를 캘 수 있는 특수 선박이다. 삼성중공업은 2000년 이후 최근까지 세계에서 발주한 44척의 드릴십 중 29척(65.9%)을 수주해 이 분야의 세계1위를 질주하고 있다.

김징완 삼성중공업 부회장은 “첨단기술이 요구되는 복합선박과 북극지방에 적합한 신개념의 선박을 개발하는 데 주력해 2012년에는 세계 초일류회사로 발전할 것”이란 포부를 밝혔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종합무역상사 1호’ 한국의 수출史를 쓰다▼

삼성그룹의 성장사(成長史)에는 한국 수출의 역사가 그대로 녹아 있다.

정부의 수출 진흥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1960, 70년대에는 삼성물산이 한국 수출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했다. 1938년 ‘삼성상회’로 출발한 이 회사는 삼성그룹의 모태이기도 하다.

삼성물산은 1969년 한국 수출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고 1975년 5월 19일 ‘종합무역상사 1호’로 지정됐다.

삼성의 한 임원은 “종합무역상사제도가 도입되기 전인 1971년 1월에 삼성은 ‘수출 신장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선 종합무역상사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구체적 건의안을 정부에 냈다”며 “그 내용은 당시 정부의 관련 정책 개발에 대부분 반영됐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1호의 몫’을 충분히 해냈다. 1975년 수출 2억 달러, 1976년 3억 달러, 1977년 5억 달러를 각각 달성하며 ‘수출 1위 3연패’를 이룬 것이다.

이 무렵 삼성은 수출 전략도 크게 바꿨다. 기존의 경공업 제품 중심에서 중화학공업 제품과 플랜트로 수출상품의 구조를 전환했다.

삼성SDI는 1976년 미국 GE사에 1만 개의 브라운관을 수출했고 삼성물산은 1978년 리비아에 80t급 병원선 12척을, 1979년에는 터키와 이란에 인산비료를 각각 3만t과 1만t을 팔았다. 삼성전자는 1975년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려고 유럽의 벨기에에 지사를 설립했고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까지 적극 공략했다.

1980년대 이후 한국의 수출은 삼성전자가 주도적으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8년 1억 달러 수출탑을 수상한 삼성전자는 1985년 10억 달러, 1995년 100억 달러, 2001년 200억 달러, 2004년 350억 달러, 2005년 400억 달러, 2007년 450억 달러 수출탑을 받으며 자신의 한국 수출 신기록을 스스로 갱신해왔다. 지난해에도 한국 기업 최초로 수출 5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삼성전자 측은 “1990년대에는 반도체와 TV가 수출을 주도했는데 2000년대 들어 휴대전화와 액정표시장치(LCD)까지 수출 전선에 가세하면서 안정적 수출 구조를 확립한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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