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불안 틈탄 익명의 대국민 사기극?

  • 입력 2009년 1월 8일 18시 35분


검찰이 8일 체포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에 대해 사법처리 방침을 밝힌 것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루머의 확산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미네르바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신드롬을 일으키며 인터넷에 등장, 한국경제에 대한 비관론과 정부 정책에 대한 거침없는 비난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거친 독설과 감성적인 말투, 부정확한 데이터로 대중을 미혹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결국 정부에 대한 결정적인 허위 사실을 유포하면서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인터넷 경제 대통령'

미네르바는 금융위기가 임박했던 지난해 7월 경 다음 '아고라' 광장에 처음 등장했다.

그는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를 써 가며 현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 세계경제의 모순 등을 막힘없이 설명해 누리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또 해박한 경제지식을 과시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와 환율 급등의 경로를 나름대로 예측, '인터넷 경제대통령'이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그의 글은 조회 수가 10만 건을 넘기도 했다.

그는 "하반기에 물가 오르니 생필품 미리 사둬라", "적어도 6개월 내에 제 2의 IMF가 온다"는 식의 단정적이고 지극히 냉소적인 어투를 즐겨 썼다. 또 금융위기가 본격화되자 "코스피의 저점은 500"이라는 충격적 전망을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실제 투자자 심리를 위축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그의 글들이 금융시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정도로 사태가 커지자 정부는 미네르바에 대한 조사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인터넷에는 "미네르바가 살해협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그러자 그는 "국가가 침묵을 명령했다"며 돌연 절필을 선언, 누리꾼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당시 아고라에서는 '미네르바 필명 쓰기' 운동까지 벌어져 지금까지 그의 필명으로 작성된 글은 500개를 넘는다.

전문가들은 이 사건에 대해 "이름도 얼굴도 알 수 없는 사이버 논객이 이렇게 오랫동안 누리꾼들의 절대적인 추앙을 받는 것이 결코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고 지적한다. 어려운 위기 상황에 발생하는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전형이라는 것.

한 경제 전문가는 "그의 글을 읽어보면 경제논리에 어긋나는 부분들이 많은데다 일종의 '정신적 장애'가 느껴져 있는 그대로 믿기가 힘든 구석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만큼 최근 경제위기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과 현 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투영돼 있는 사건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허위사실 유포로 자충수

미네르바의 글이 이어지자 인터넷에서는 자연스럽게 "도대체 그가 누구냐"는 의문이 불거졌다.

누리꾼들은 그의 글을 분석하면서 '증권사에서 근무하는 50대', '조직에서 밀려나 조기퇴직한 경제관료' 등으로 추정했다. 그의 글이 대부분 금융사나 경제부처에 몸을 담고 있지 않고서는 알아내기 힘든 정보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체는 좀처럼 밝혀지지 않았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나를 포함해 많은 금융계 인사들이 '미네르바'가 아니냐는 지목을 받았다"고 말했다. 급기야 이달 5일 미네르바가 자신의 글에 "6·25 전쟁을 겪었고 외환위기 때 미국에 체류했다"고 주장하면서 그가 70대 이상의 노인일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오기도 했다.

지금까지 정부 당국은 미네르바의 주장에 대해 속으로는 "논평할 가치도 없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온라인을 중심으로 그에 대한 인기가 예상 밖으로 치솟으면서 적극적 대응을 하지 못 했다.

그러나 지난달 말 "정부가 금융기관과 주요기업에 달러 매수를 금지하라는 공문을 보냈다"는 결정적인 허위 사실을 인터넷에 퍼뜨리면서, 그는 '익명의 삶'을 마무리했다.

유재동기자 jarrett@donga.com

이서현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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