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 경영 ‘시계 제로’…해외 기업들, 실물경기 침체

  • 입력 2008년 11월 1일 02시 58분


허리띠 조이고 경영계획 다시 짠다

국내 기업들 글로벌 위기로 경영 ‘시계 제로’

경기침체 최소한 내년 1분기까지 지속 전망

삼성전자-SK텔레콤-LG전자 등 긴축 경영

글로벌 금융위기 장기화로 기업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국내 주요 기업이 내년 경영계획을 다시 짜고 있다.

심각한 경기 침체가 최소한 내년 1분기(1∼3월)나 상반기(1∼6월)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긴축 경영’이 확산되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기업들이 내년 경영목표를 정하는 시점도 짧게는 2~3주, 길게는 한 달 이상 지연되고 있다.

○ 내년 경영계획 수립 잇달아 늦춰져

31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9월부터 내년 경영계획 수립에 착수했지만, 환율이 크게 출렁이는 바람에 그동안의 작업을 모두 폐기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보통 11월 초면 끝났던 다음 해 경영계획 수립이 올해는 11월 중순 또는 12월로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지금은 ‘시계(視界) 제로의 깜깜이 상황’”이라며 “일단 보수적 경영전략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고 전했다.

LG전자 역시 경영계획 수립을 진행하던 각 사업부에서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환율과 유가 변동 폭이 커 쉽게 사업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12월 중 개략적인 계획을 수립해 내년 1월 초 발표할 계획이지만 더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는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의 PC 및 TV 주문량이나 가격을 전혀 예측할 수 없어 올해는 평년보다 20일 정도 늦어진 11월 초 경영계획을 세울 예정이다.

STX그룹의 한 임원도 “지금쯤이면 내년 사업계획에 대한 윤곽이 나올 시점인데 환율 널뛰기가 이어지면서 점점 뒤로 늦추고 있다”고 털어놨다.

통신이나 유통 등 내수 기업들도 내년 계획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신세계 구학서 부회장은 최근 “경영계획을 만들면서 비상경영계획(컨틴전시 플랜)도 함께 짜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LG텔레콤도 기존의 사업계획 외에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경영계획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매년 10월 말 계열사의 경영 목표를 수립해 온 KT는 남중수 사장에 대한 검찰 수사의 영향까지 겹쳐 이 절차를 연말로 미뤄야 할 것으로 보인다.

○ 당분간 긴축경영 불가피할 듯

산업계에서는 은행과 증권사에 이어 임원 연봉 동결이나 임직원 성과급 축소, 해외출장 자제 등 ‘허리띠 졸라매기 경영’에 나서는 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연말연시 인사에서 임원 승진 규모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SK텔레콤은 예산 40% 절감을 목표로 내년 경영계획 마련에 착수했다. 이 회사 김신배 사장은 회사가 보유한 골프 회원권을 매각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LG전자도 팀별로 업무 우선순위에 따라 경비 절감 방안을 마련 중이다. 제일제당 관계자는 “당장 직원들 사이에는 올해 성과급이 안 나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고 전했다.

기업의 투자계획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부문 투자 규모를 하향 조정한 데 이어 내년에는 액정표시장치(LCD) 부문 투자 축소도 거론하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 역시 “내년에는 현금 창출 범위 내에서만 투자한다”고 못 박았다.

KTF도 내년 투자액을 올해(9500억 원)보다 16% 정도 줄어든 8000억 원으로 제시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구조조정-감산 마른수건 쥐어 짠다▼

해외 기업들 실물경기 침체로 경영 비상

월풀-닛산-모토로라 등 정리해고 ‘칼바람’

파산도 잇달아… 伊 명품매출 증가 0% 전망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실물경기 침체로 이어지자 세계 주요 기업도 구조조정과 감산(減産)에 나서고 있다.

31일 KOTRA 각국 코리아비즈니스센터(옛 무역관)에 따르면 미국 가전업체인 월풀은 5000여 명을 해고해 내년까지 전체 인력의 7.3%를 줄일 계획이다.

소비자들이 신제품 구입을 미루고 있어 올 3분기(7∼9월) 순익이 6.9% 감소한 데 따른 것이다.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미국 모토로라도 3분기 순손실이 3억9700만 달러(약 5041억 원)에 이르자 휴대전화 사업부를 중심으로 전 세계 직원의 4.5%인 3000여 명을 감원키로 했다.

중국 허베이(河北)철강그룹 등 중국 4대 철강업체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내수가 부진하고 철강 수출 둔화로 재고가 쌓이자 10월 생산량을 각각 20%씩 줄였다.

인도 최대그룹인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는 포장지의 원료로 쓰이는 폴리프로필렌의 국제 수요가 급감하자 생산량을 절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독일 도이치텔레콤은 콜센터 63개 중 39개를 폐쇄해 전체 1만8000여 명의 콜센터 직원 중 1만여 명을 해고할 방침이다.

일본 자동차회사인 닛산은 스페인 공장 직원 3500명을 정리해고할 것이라고 밝혔고, 체코 최대 자동차 생산업체인 ‘스코다’는 해외 수요 감소로 10월 마지막 주 생산을 중단했다.

도산하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62년 역사의 홍콩 3대 전기제품 체인점인 ‘타이린’은 유동성 문제에 봉착하자 최근 폐업을 선언했다. 중국 본토와 홍콩에 600여개 지점을 두고 있는 중저가 의류 브랜드인 ‘유-라이트’는 금융권 채무를 갚지 못해 최근 파산했다.

완구업체인 홍콩의 스마트유니언은 지난해 700만 위안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견실했지만 올해 들어 해외 주문이 줄어든 여파로 도산했다.

덴마크 저가항공사인 ‘스털링’은 무리한 확장과 유가 급등 영향으로 최근 파산했다.

불확실한 경제 상황으로 인한 투자 보류도 이어지고 있다.

이집트 최대 철강업체인 에즈스틸은 설비 확충을 위해 320MW(메가와트) 규모의 발전소 건설 입찰 제안서를 지난달 30일까지 받기로 했다가 이를 연기했다.

뉴질랜드에서는 총투자비 1억 달러 이상의 대형 프로젝트 20여 건이 중도에 중단되거나 개발 기업의 부도로 필지 분할 및 매각 절차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뉴질랜드 시멘트 1∼8월 판매액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24.2% 감소했다.

소비 심리도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다.

이탈리아 명품 관련 기업협회인 알타감마는 내년 이탈리아 명품 패션업계의 매출 증가율이 0%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에서는 올해 베니건스가 파산했고, 레스토랑 체인 ‘다든’은 실적이 부진한 점포 56개를 폐쇄했다.

KOTRA 관계자는 “각국이 금리 인하 등 금융위기 확산을 막기 위한 정책 공조에 나서고 있지만 경제 전망은 여전히 불확실하기 때문에 실물경기 침체가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한국도 ‘혹한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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