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8년 10월 23일 02시 59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 바닥 찍고 상승 “공급량 부족 만성화”
현재 매수자 주도 시장… 고금리 상황서 대출받아 집 사기는 부담 커
《‘집값 추세가 바뀔까. 매매 시기는 언제가 좋을까.’ 정부가 21일 ‘가계 주거부담 완화 및 건설 부문 유동성 지원·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한 뒤 소비자에게 생긴 궁금증들이다. 얼마 전만 해도 주택시장은 폭락설이 지배했다. 매물이 넘쳤지만 수요는 드물었다. 정부 대책을 계기로 이런 시장 구도가 바뀐다면 집을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 하지만 과거 부동산 가격 조정기의 경험으로 볼 때 정부대책이 효과를 보는 시점은 실물경기가 회복되는 시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 대책 효과 금방 안 나타나
과거 주택시장이 급등하거나 급락하는 시점마다 정부는 수요를 인위적으로 줄이거나 늘리는 식으로 시장에 개입했다.
하지만 정부 대책이 나왔다고 집값이 바로 움직이진 않았다. 시장 부양책이 나온 뒤 경기가 회복돼 집을 사려는 심리가 살아나야 비로소 집값이 상승했다.
1990년 이후 서울 강남권(강남, 서초, 송파구)을 포함한 한국의 집값은 대체로 ‘1990년대 초반의 상승기→1990년대 후반의 하락기→2000년대 초반의 상승기’를 거쳤다.
서울 강남 아파트를 대변하는 대치동 은마아파트 112m²형은 1989년 말 1억750만 원에서 1990년 3월 1억4250만 원 선으로 급등했다. 이런 집값 폭등에 정부는 1990년 10월 등기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투기억제책을 내놨지만 집값은 더 올라 1990년 말 2억 원을 넘었다. 집값은 1991년 12월에 1억7250만 원으로 다소 안정됐다. 대책 발표부터 안정까지 1년 이상 걸린 셈.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1월 나온 부동산 활성화대책의 효과도 즉각적이진 않았다. 1998년 1월의 집값으로 돌아가기까지 1년 정도 소요됐다.
○ 추가 하락의 전조들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아파트를 가진 전모(53) 씨는 추석 전 9억2500만 원에 팔 기회가 있었는데 매물을 회수했다가 크게 후회하고 있다. 이후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만날 때마다 가격을 깎는 통에 번번이 거래가 깨진 것. 최근 7억8000만 원에 겨우 계약했다. 이처럼 지금의 주택시장은 매수자가 주도하고 있다.
이곳에서 중개업을 하는 채은희 씨는 “급전이 필요한 사람과 은행 대출 이자 부담이 급증한 사람들이 매물을 내놓는 반면 매수자는 ‘더 싸지겠지’ 하며 관망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지방도 마찬가지. 지난해 10월 부산의 부산진구에서 해운대구로 이사한 한모(63) 씨는 1년째 전에 살던 집을 처분하지 못하고 있다. 가격을 대폭 내려도 문의조차 없었다.
국민은행이 이달 13일 서울 주택매매 동향을 조사한 결과 9월 중순에 비해 주택 매매가가 평균 0.3%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전 지역의 평균 가격이 하락한 것은 2005년 1월(0.3% 하락) 이후 3년 9개월 만이다.
전문가들은 집값 약세가 폭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근거는 △주택담보대출이 8월 말 현재 233조 원에 이르고 △주택 투자수익률이 하락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세계적인 주택경기 부진이 국내로 확산될 것이라는 점 등이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고금리 상황에 대출이 너무 많아 주택 투매현상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금융시장이 안정되지 않는 한 부동산 대책만으로 집값 하락을 막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 연착륙 주장의 3가지 근거
하지만 집값이 하락세를 멈추고 안정되거나 바닥을 찍고 다시 오를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이들은 공급이 여전히 부족하고, 외국에 비해 시장 상황이 안정적인 편인 데다 한국인의 주택 소유 욕구가 강하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주택건설 물량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31만 채에서 2002년 67만 채로 급증했다가 2004년부터 2006년까지는 50만 채에 못 미쳤다. 지난해 56만 채로 회복됐지만 수도권 공급은 여전히 부족하다. 국토해양부는 건설사들이 주택을 잘 짓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이어지면 향후 10년간 수도권 주택 건설물량이 연평균 18만 채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본다.
한국인은 ‘내 명의로 된 집’을 갖길 원하는 성향이 외국인보다 강하지만 2005년 기준 한국인의 자가주택 보유율은 60%로 미국(68.3%)이나 영국(69.8%)보다 크게 낮다. 잠재적인 주택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0년대 초반 국내 집값이 외국 주요국보다 적게 오른 만큼 세계적인 집값 하락 추세가 나타나도 국내 집값이 크게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며 “집값이 유(U)자 형태로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언제 집 살까
주택 매입 시기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는 전문가는 없다. 일부 용감한 건설사 관계자 정도가 “내년 상반기, 하반기쯤 고려해 보라”는 식으로 모호하게 말한다.
집값 폭락설을 주장해 온 전문가들은 "정부 대책으로 급매물이 다소 줄어 집값 하락 속도가 둔해질 수는 있지만 거품 붕괴의 대세를 막을 수는 없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금리가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대출 규제가 풀린다고 해서 은행에서 자금을 빌려 집을 사는 것은 위험하다.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