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 여는 한은, 2조풀어 키코 피해 中企지원 나설듯

  • 입력 2008년 10월 22일 21시 18분


23일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를 앞두고 금통위가 최근 국내 금융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어떤 보따리를 풀어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 시중은행, 기업은 거의 매일 한국은행 측에 '곳간'을 열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금통위는 이번 회의에서 통화옵션 파생상품 '키코(KIKO)'로 피해를 본 중소기업의 지원을 위해 총액한도대출을 2조 원 정도 늘리는 식의 '맞춤형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이달 9일 기준 금리를 내린 뒤에도 시중 금리가 계속 상승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은행채 매입과 추가 금리 인하 등의 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정부당국과 은행권이 요구하는 '은행채 매입'은 '도덕적 해이' 등의 부작용이 커 당장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2조 원 풀어 '키코 피해' 중소기업 지원

금통위는 키코 피해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총액한도대출 규모를 현재 6조5000억 원에서 8조5000억 원으로 2조 원 가량을 늘리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통위가 중소기업을 위한 저리의 정책자금인 총액한도대출 규모를 확대하는 것은 2001년 10월 이후 7년 만이다.

금융위기가 실물 경제로 번져 기업의 자금난이 확대되고 수출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연 3.25%의 정책자금인 총액한도대출을 늘려 키코 피해 기업에 대한 '맞춤식' 지원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또 환매조건부채권(RP)와 국채 매입, 통화안정증권 중도 상환을 통해 시중에 원화 자금을 풍부하게 공급한다는 방침을 이미 밝혔다. 당장 23일 오전 2003년 3월 이후 처음으로 통화안정증권 7000억 원어치를 중도 환매해 시중에 돈을 풀기로 했다.

하지만 한은이 이미 금리를 내리고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지만 은행권으로 돈이 쉽사리 흐르지 않고 있다. 한은이 이달 9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지만 3개월물 CD 금리는 10일부터 지속적으로 올라 6.15%까지 상승했다. 2001년 1월19일(6.16%) 이후 7년 9개월 만의 최고치다.

●대출금리 상승이 고민

정부가 가장 강력하게 요구하는 대목은 한은이 시중은행이 발행하는 은행채를 사달라는 것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금융위원회, 한국은행과 은행채 매입이나 (담보대출) 금리 인하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곧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이 21일 서민 부담을 낮추기 위해 변동형 주택담보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인하를 유도하겠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의 발언이다.

문제는 금리를 내릴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시중 은행이 원가를 절감하거나 저렴하게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데 은행 수신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은행채와 CD 금리가 고공비행을 하고 있어 조달 비용을 쉽사리 내리기 어렵다.

은행권이 최근 한국은행이 시중 유동성을 조절하기 위해 사용하는 환매조건부채권(RP) 대상 증권에 국채 외에도 은행채를 포함시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은행채를 사주면 금리가 떨어질 수 있고 올해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25조 원의 은행채 차환도 가능하다는 논리다.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이날 "은행들의 원화 유동성 확보를 위해 한국은행이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 대상에 은행채를 포함할 필요가 있다"며 한은을 압박했다. 그는 또 "한은이 RP 거래 대상에 은행채를 포함시키면 금융당국은 은행들이 은행채 발행을 통해 자산 확대 경쟁을 하는 것은 막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은행채 매입의 부작용은 정부가 나서서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은행권의 '도덕적 해이' 논란

한은은 은행채 매입 요구에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금융위기 대응 비상계획에 은행채 매입 방안이 포함돼있지만 현재 시점이 이 같은 카드를 꺼낼 '유동성 위기'는 아니라는 게 한은 의 분위기다.

한은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CD를 사주기로 한 것은 '뱅크 런(은행 예금인출사태)' 우려가 있는 은행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국내 은행은 자본을 조달할 수 있지만 비용이 높은 '금리의 문제'여서 상황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위기 상황이 아닌 데도 은행채를 사주는 '극약처방'을 내리면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해외의 불신을 키우고 시중 은행이 사실상 돈을 찍어내는 역할을 갖게 돼 '도덕적 해이'도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은행 자본 조달 비용이 높아지면 서민과 기업 대출 금리 부담이 상승하고 부동산 등 자산 가격 하락과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며 "당장 은행채 매입에 대해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시장 상황을 계속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작용은 있지만 '은행채 카드'를 전혀 외면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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