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글꼴에 브랜드가치를 담아라”

  • 입력 2008년 10월 9일 02시 59분


기업문화-제품특성 반영 독자서체 개발 열풍

서울시-순천향大등 공공기관도 잇따라 추진

CJ제일제당은 식품업계 최초로 자사(自社)의 가공식품에 쓰일 전용 서체를 만들어 이달 중순부터 제품 패키지에 도입할 계획이다. 장류와 김치처럼 손맛이 담긴 전통식품에는 캘리그래피(손글씨)를 응용한 ‘CJ손맛체’를, 햄이나 소시지, 레토르트 식품에는 주 소비층인 20, 30대를 겨냥해 명조체를 변형한 ‘CJ맛깔체’가 사용된다.

이병주 CJ디자인센터 디자이너는 “식품의 특성에 맞는 글자체를 개발해 제품에 도입하는 첫 사례”라며 “앞으로 모든 제품에 전용 서체를 도입해 차별화된 디자인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최근 기업들이 전용 서체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업이미지 통합을 위한 BI(Brand Identity), CI(Corporate Identity)에서 나아가 서체 디자인에 기업 정체성을 담는다는 뜻의 TI(Typography Identity)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글자체가 단순한 의미 전달 차원을 넘어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는 표현수단으로 그 쓰임새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8일 특허청에 따르면 2005년 7월부터 글자체가 디자인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된 이후 올해 8월 말까지 127건의 디자인 등록이 신청돼 그중 59건이 등록됐다.

온라인쇼핑몰 옥션은 해상도가 낮은 웹(web)상에서도 판독이 쉬운, 고딕체를 응용한 전용 서체 ‘옥션 고딕’을 개발하고 무료 배포 중이다. 최문석 옥션 마케팅실 상무는 “디지털 시대에 글자체는 정보 전달 외에도 감성과 이미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삼성생명은 각종 인쇄물에 제각각 사용됐던 서체를 통일해 7월부터 9종류의 전용 서체를 사용하고 있다. 서체 명칭은 삼성생명의 영문표기인 ‘Samsung Life Insurance’의 앞글자와 기업 슬로건 ‘a partner for life’의 ‘파트너’를 따와 ‘SLI파트너’로 이름 붙였다.

삼성생명 측은 “고객이 접하는 매체는 다양해지고 있는데 인쇄물과 홈페이지마다 글자체는 제각각이어서 브랜드의 통일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에 따라 전용 서체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패션 브랜드 쌈지는 일부 매장에 ‘생긴 대로 살자’, ‘웃으면 복이 와요’, ‘울긋불긋 꽃대궐’ 등 정겨운 글귀를 쌈지 특유의 서체로 나무판에 써 독특한 매장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5년 개발한 ‘아리따’체를 이용한 문화재 안내판을 만들어 문화재청에 기증하기도 했다.

기업뿐 아니라 서울시도 전용 서체를 만들었다. 무질서한 도시 경관을 바로잡고 조화로운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다. ‘선비 정신의 강직함과 단아한 여백’, ‘한옥 구조의 열림과 기아의 곡선미’를 담았다는 서울 서체는 앞으로 서울시내 주요 시설 간판과 교통표지판, 주민센터 현판 등에 적용될 예정이다.

순천향대는 젊고 깨끗한 대학 이미지 제고를 위해 지난해 국내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전용 서체 ‘순천향체’를 만들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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