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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7월 19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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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5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매탄3동에 위치한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회의실에 휴대전화 사업을 담당하는 고위 임원 8명이 모였다. 이들은 애니콜 프로슈머 모임인 ‘드리머즈’ 회원들의 발표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햅틱폰 등 바(bar) 타입 제품을 쓰다 보면 손목이 꺾여 불편합니다. 그래서 오른쪽으로 120도 가량 휘어진 디자인이 필요한 거죠.”
삼성디자인스쿨(SADI) 제품디자인학과에 재학 중인 금혜경(26·여) 씨가 기존 휴대전화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상품기획 담당 임원이 바삐 메모를 했다.
까다로운 고객의 취향에 맞추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 국내 대기업들은 디자인에서부터 마케팅까지의 전 과정에서 프로슈머의 아이디어 활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애니콜 드리머즈 회원들은 이날 3개월간 연구한 차세대 휴대전화 3종의 아이디어를 발표했다.
‘직접 찍은 사진으로 꾸미는 휴대전화 외관’ ‘직장인을 위한 발표용 레이저 포인터 내장 휴대전화’, ‘필요한 콘텐츠만으로 직접 구성하는 휴대전화 메뉴’ 등이 등장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들이 제시한 기술이나 디자인이 절대 경쟁업체로 새어 나가선 안 된다”며 보안에 만전을 기했다.
국내 판매용 휴대전화의 디자인을 담당하는 삼성전자 장동훈 상무는 “이들의 아이디어는 회사 내 ‘프로’들이 구상 중인 전략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전문적이고 구체적이다”라며 “아마추어들이 짧은 시간 동안 기획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라고 평가했다.
○ 제품별로 특성화된 프로슈머 모임
LG전자는 제품별로 특성화된 프로슈머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제품마다 꼭 맞는 고객의 인사이트(통찰)를 발굴하기 위한 것이다.
이달 1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위치한 LG전자 본사 회의실에는 30, 40대 남성 20여 명이 앉아 디지털TV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동통신, 제약, 자동차 등 각 분야에서 일하는 프로슈머와 LG전자 제조업체 실무자들이었다. 프로슈머들은 각자의 직장에서 퇴근한 뒤 회의에 참석하는 열의를 보였다.
이날 참석자들은 “인터넷으로 TV 예약 녹화가 가능하도록 웹 연동성을 높여라” “기존제품의 녹화 저장용량은 너무 부족하다” “프로그램 도중에 원하는 장면만 정지시켜 저장하는 기능을 넣어라” 등 전문적인 수준의 개선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LG전자 강일선 차장은 “그간 개발자 처지에서만 TV를 연구해 왔는데 소비자들도 개발자 이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다양한 기능을 활용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며 “이날 나온 개선안을 제품 개발에 적극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LG전자는 식기세척기 체험단에 맞벌이 부부 고객을, 노트북PC 체험단에 가정주부를 모집하는 등 제품별로 특성화한 모임을 통해 의견을 듣고 있다.
○ 프로슈머의 말에 움찔하는 프로들
최근 “고객의 목소리를 듣자”며 40여 명의 고객위원회를 꾸린 하나로텔레콤은 예상치 못한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고객위원들은 지난달 열린 위촉식에서부터 아낌없이 쓴 소리를 쏟아냈다.
“하나로텔레콤에 불만이 없어서 계속 사용해 온 것은 아니에요. 고객센터에 항의 전화도 여러 차례 해봤죠. 저는 지금 외국계 서비스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제가 갖고 있는 전략이나 생각들을 알려드리고 싶어 참가했습니다.”
이날 대표로 위촉장을 받은 한 고객의 말이다.
고객위원들은 “다른 사업자는 데이터 케이블을 무료로 발송해 주는 서비스가 감동적이던데, 이를 벤치마킹하라”고 주문하는 등 타 회사와의 비교에도 거침이 없다.
하나로텔레콤 관계자는 “부사장 등 고위급 임원 앞에서 말을 아낄 줄 알았는데 거침없는 발언이 나와 놀랐다”며 “앞으로 쓴소리를 더 적극적으로 들어 그간 실추된 기업 이미지를 회복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수원=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프로슈머(Prosumer):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제품 개발에 적극적인 참여와 의사를 표현하는 소비자를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