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수세 실종…‘거꾸로’ 선 집값

  • 입력 2008년 7월 10일 20시 48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55) 씨는 최근 한 달간 문의전화를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한 달 전부터는 하루 종일 문의전화가 한 통화도 오지 않는 날이 늘자 김 씨는 사무실 전화기가 고장 나 문의전화가 안 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본인의 휴대전화로 직접 전화를 걸어보기도 했다.

김 씨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거래가 되지는 않아도 문의전화는 간간히 왔다"며 "외환위기 직후보다 상황이 더 심각한 것 같다"고 우려했다.

서울 강남권의 아파트 값도 하락폭이 눈에 띄게 커지고 있다. 아파트 재건축을 준비 중인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5단지 112㎡는 1월 초 평균 매매가가 13억2500만 원 정도였지만 현재는 11억2000만 원 선으로 2억500만 원이 내렸다.

GS건설이 지난달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분양한 '반포자이'도 2.02 대 1의 청약경쟁률을 나타내며 강남권 대기 수요를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실제 계약률은 60%에 그쳤다.

주택 매수세 실종과 거래 단절로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주택시장은 최근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우려 확산과 고(高)금리 등 거시경제 악재가 겹치면서 집값 하락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주택시장 침체 심화

수도권 집값에 미치는 영향이 큰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는 최근 가격 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작년 12월 대통령 선거 직후 규제가 완화될 것이란 기대 등에 힘입어 호가(呼價)가 반짝 상승했지만 1, 2월을 뺀 상반기 내내 가격이 뒷걸음질을 쳤다. 일례로 서울 송파구 가락동 시영2차 63㎡는 현재 평균 매매가가 9억750만 원 정도로 1월 초(10억7000만 원)보다 1억6250만 원(15.2%) 내렸다.

강남권은 물론 서울지역 전체도 집값이 약세를 보이고 있다.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강남, 서초, 송파구 등 강남3구의 아파트 값 상승률은 1월 0.11%, 2월 0.05% 등으로 보합세였지만 3월 -0.06%, 4월 -0.34%, 5월 -0.29%, 6월 -0.4% 등으로 하락폭이 커지고 있다. 서울지역 아파트 값 상승률도 4월 0.73%를 나타낸 뒤 5월 0.47%, 6월 0.28%, 7월 들어 최근까지 0.05% 등으로 상승률이 둔화되고 있다.

●경기하강, 주택경기 침체 심화에 본격 영향

전문가들은 최근 주택시장의 침체가 심화되고 있는 것은 수요와 공급 등 주택시장 내부 변수 이외에도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확산과 고금리 등 거시경제 변수가 주택시장에 악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선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확산되면서 수요자들의 매수심리가 얼어붙었다. 소득이 감소할 우려가 커지자 주택 수요자들이 목돈이 필요한 주택 구매를 미루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다 금리가 올라 수요자들의 비용 증가와 수익률 하락을 초래하면서 무주택자들은 주택시장 진입을 꺼리고 유주택자들은 집을 매물로 내놓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상승세를 타면서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이자 부담도 가중될 전망이다.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 기준금리인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1일 연 5.37%에서 10일 연 5.44%로 0.07%포인트 올랐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의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따라 오르고 있다.

신한은행의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1일 연 6.37~7.77%에서 10일 연 6.40~7.80%로 최저금리 기준 0.03%포인트 올랐다. 우리은행의 변동형 주택대출 금리도 1일 6.27~7.77%에서 10일 6.30~7.60%로 최저금리 기준 0.03% 올랐다.

주택을 담보로 1억 원을 빌렸다면 이자 부담이 연 3만 원 늘어나는 셈이다.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기준금리인 은행채 금리가 오르면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은행채 금리는 1일 연 6.51%에서 9일 연 6.65%로 0.14% 올랐다. 이에 따라 신한은행의 고정형 주택대출 금리는 1일 연 7.43~8.83%에서 10일 연 7.66~9.06%로 최저금리 기준 0.23%포인트 올랐다. 우리은행의 고정형 주택대출 금리도 1일 7.55~9.05%에서 10일 7.76~8.86%로 최저금리 기준 0.21%포인트 올랐다.

주택을 담보로 1억 원을 빌렸다면 이자 부담이 연 20만 원 가량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실제로 주택담보대출 증가율도 주춤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한 달 동안 주택담보대출은 1조3000억 원 늘어 5월 증가액(1조5000억 원)에 못 미쳤다.

●앞으로 경제상황이 변수

전문가들은 현재의 주택시장에서 주식시장에서의 '투매'와 같은 '급매물 던지기'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당분간 주택가격이 폭락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경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적기 때문에 집값 약세는 이어지고, 고가 아파트가 밀집된 강남권 등이나 투기 수요가 몰린 서울 강북지역 재개발 지분 등은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앞으로 주택가격은 경제 전체의 여건이 얼마나 더 악화되느냐, 경제 회복이 얼마나 빨리 되느냐에 따라 변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훈기자 jefflee@donga.com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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