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굴이란 석관(石棺)에서 인생을 되돌아보다

  • 입력 2008년 7월 9일 11시 07분


컬럼비아스포츠웨어 필드테스터 북한산 동반산행기

지난 6월 28일 한국 근대등산의 시원지이며 현주소이기도 한 우이동, 일명 '한국의 샤모니'에 위치한 등산아카데미 교육장에 모인 컬럼비아 스포츠웨어 필드테스터들은 모두들 밝은 표정과 건강한 모습으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장마전선이 북상하고 있다는 일기예보를 들으며 우리 일행은 오늘의 산행지인 북한산으로 향했다.

북한산은 우리민족 근,현대 600년 역사와 문화의 중심인 서울의 모산 이다.

삼국시대에는 북한산을 차지한 국가가 그 시대의 패권 국가였으며 삼국은 북한산을 차지하기 위해 국운을 걸었다고 한다.

북한산은 삼각산(三角山)이라고도 하는데, 백운봉(836m), 인수봉(810m), 만경봉(799m)이 마치 거대한 3개의 뿔처럼 솟아 있다 하여 삼각산이다.

또한 삼각산은 예로부터 우리나라 '5대 명산'(5악.五嶽)인 백두산(북악), 금강산(동악), 지리산(남악), 묘향산(서악), 삼각산(중악)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산세와 풍광이 뛰어나다. 거대한 화강암의 연봉들은 위풍당당하고 특이한 경관은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북한산을 오르는 코스는 구기동, 효자동, 세검정, 정릉동, 우이동 등을 출발기점으로 잡을 수 있다.

우이동 코스는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봉과 암벽등반의 요람인 인수봉으로 오르는 최단 코스다.

0시 20분 도선사 광장에 도착한 우리는 도선사를 지나 5분 쯤 산길을 올라 소나무 아래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허리를 비틀고 대퇴부 근육을 잡아 늘리는 짜릿한 스트레칭은 오늘 산행코스가 범상치 않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하늘은 잔뜩 흐렸고 장마전선이 에너지를 축적하고 있다.

11시 10분 용암문에서 휴식을 취하고 노적봉으로 향한다.

노적봉은 조선 후기 피난국가였던 북한산성 내의 유일한 암봉으로서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노적가리를 쌓아놓은 것 같다 하여 그리 부른다.

북한산에는 옛 부터 무수한 사찰이 있었다.

고려 현종이 어린 시절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숨어 살았다는 신혈사는 비봉 북쪽에 있다. 노적봉 아래에는 적석사가 있었으나 북한산성 축성 후 그 자리에 '훈련도감 유영'이 들어섰고 그 옆에는 노적사가 있다. 최근 노적사는 대대적인 불사를 하여 제법 규모가 커졌다.

노적봉은 동봉과 서봉으로 된 쌍봉이다. 동봉은 걸어서 오를 수 있고 서봉은 암벽등반으로만 오를 수 있다.

우리는 동봉에 올라 백운대의 웅장한 모습과 인수봉, 만경봉을 모두 조망할 수 있었다. 운 좋게도 구름면사포에 감싸이기 직전의 풍광을 둘러보는 행운이 따랐다.

노적봉 정상은 북한산의 진면목을 모두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왜냐하면 주능선으로 둘러쳐진 북한산의 심장부에 우뚝 솟아 있는 독립봉이 바로 노적봉이기 때문에 북한산 전체를 360도로 둘러 볼 수 있다.

노적봉 정상에는 금마타리, 자주꿩의다리, 바위채송화, 돌양지꽃 등 예쁜 야생화들이 우리를 반기고 있어, 모두들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작가가 된다.

위문을 지나 백운대 오르는 초입 부근 오른쪽 신갈나무 아래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시간은 벌써 12시 30분이다.

가끔씩 떨어지는 빗방울은 불안하기도 하지만 시원한 느낌도 든다.

쇠말뚝에 묶여진 와이어와 돌을 깎아 만든 스텝을 이용해서 오르니 드디어 북한산 정상이다. 오후 1시 30분.

"이성계는 '말'을 타고 백운대에 올랐다"고 하자, 누군가 "이성계 보다 그 '말'이 더 대단하다"며 모두들 웃는다.

지척에 보이는 인수봉에는 오늘도 클라이머들이 붙어 있다. 멀리 비봉과 보현봉이 보이고 우리가 올랐던 노적봉도 새롭게 다가선다. 사람의 발길이란 정말 대단하다. 보이는 곳은 못 오르는 곳이 없으니...

백운대 정상에서 컬럼비아 '필드테스터'들의 등산 장비 품평이 터져 나온다.

정상에 오르니 장비 자랑하고 싶은 생각이 난 모양이다.

장비 얘기는 꺼냈다하면 끝이 없는 법, 떨어지는 빗방울은 발길을 재촉한다.

'정상이란 내려가기 위해서 오른다.'는 말대로 우리도 그랬다.

정상에서 30m 쯤 내려선 다음 인수봉 쪽으로 곧장 내려가는 '호랑이굴'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호랑이굴 등산로는 올라가기보다 내려가기가 더욱 힘든 코스다.

1기 최우수 테스터인 강기한씨와 이동일씨의 호랑이굴 코스 등산 경험은 대원들의 안전 등산에 큰 힘이 된다.

급경사면을 조심스레 내려선 다음 드디어 '호랑이굴'로 진입한다.

호랑이굴은 상단 굴과 하단 굴로 구분된다. 내려가기의 경우에는 상단 굴의 입구 찾기가 쉽지 않다. 바위 바닥에 뚫린 작은 구멍(몸집이 큰 사람은 비비고서 겨우 들어갈 정도)으로 힘들게 내려서면 발이 허공에 뜬다. 처음 내려가는 사람은 "이런 곳을 어떻게 내려가? 말도 안돼!!"라고 한다.

오늘은 습도가 높아 바위 면에 물까지 흐르고 있다. 마침 강기한씨가 비상용 슬링(로프 대용의 짧은 끈)을 가져와서 한결 쉽게 내려선다.

6개의 배낭을 서로 도와가며 릴레이식으로 먼저 내리고 몸은 따로 내려선 다음, 굴속에서 3m 정도 옆으로 이동하여 바로 하단 굴로 진입한다. 역시 배낭을 먼저내리고 한사람 씩 굴을 빠져 내려온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팀웍은 Good!

만약 바위가 투명이었다면 굴속에서 허우적거리는 16명의 모습은 '괴기한 자세' 콘테스트 그랑프리 감이다.

하단 굴을 빠져나온 다음 계곡 아래까지 완전히 내려서서 다시 백운대와 숨은벽 능선의 좁은 바위틈 안부로 올라서야 한다. 전원 무사히 바위틈을 빠져나오니 모두들 홀가분한 모습이다. 그래도 '필드테스터'들이라 힘들어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역시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야!"

우리는 다시 잠수함바위 능선으로 하산을 재촉 한다.

내려오는 도중 인수봉을 가장 웅장하게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에서 다시 한 번 북한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우이대피소 앞에서 인수봉을 뒤로 하고 하루재를 넘었다. 하루재는 옛날 산 아래 마을에서 나무하러 갔다 오면 하루가 걸린다 하여 '하루재'다.

하루재에서 하산 길은 각자 자유선택에 맡기고, 다시 우이동 등산아카데미로 집결한 시간은 오후 5시.

"나는 오늘 호랑이굴이란 석관(石棺)에 들어가서 내 인생을 다시 보았습니다. 그리고 북한산이 이렇게 아름다운 산이란 것도 오늘 알았습니다." 라는 한 참가자의 산행 소감 발표에 모두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 산악사진에 관한 이훈태 회장의 깜짝 강연, 이규태 원장의 장비 상식에 관한 '허허실실론' 그리고 테스터들의 장비에 관한 토론으로 흥겨운 뒷풀이 후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렸다.

"모두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테스터 산행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납시다. 하이콜!!!"

마운틴월드 이규태 기자


▲ 영상취재 : 윤태진 동아닷컴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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