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 소비 ‘이상한 역주행’

  • 입력 2008년 6월 30일 02시 57분


경기침체 속 신용카드 더 긁고 소매판매액도 변화없어

전문가 “휘발유 가격 탄력성 작아… 통계 착시일 수도”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겹치면서 정부 당국이나 기업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지만 휘발유 소비, 신용카드 사용 등 일부 소비지표는 여전히 무풍지대다. 하루가 다르게 기름값이 치솟고 있는데도 휘발유 소비량은 아직까지 뚜렷한 감소 추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국내 월별 휘발유 소비량은 3월 508만 배럴, 4월 526만 배럴, 5월 541만 배럴로 소폭 증가 추세다. 1월부터 5월까지 휘발유 누적 소비량은 2554만 배럴로 지난해 동기 대비 1.17% 늘어났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6월 중 소비량 공식 집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뚜렷한 감소세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물가 올라도 소비는 여전

1분기(1∼3월) 신용카드 이용실적도 112조5000억 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16% 증가했다. 해외 이용 실적은 1조2960억 원으로 18% 늘었다.

술도 여전히 잘 팔린다. 1∼5월 주류 소비량은 맥주, 소주, 위스키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4.7%, 1.0%, 0.6% 늘었다.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 최모(27·여) 씨는 “경제가 힘들다고 하지만 지금도 한 달에 서너 차례 백화점 쇼핑을 다닌다”면서 “요즘 직장 여성들은 물가가 올랐다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대신 고유가, 고물가 시대에 적합한 펀드나 주식을 찾는 등 ‘스마트’한 방식으로 재테크를 한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매판매액은 2월 19조3957억 원, 3월 20조9432억 원, 4월 20조8130억 원으로 큰 차이가 없다. 소매판매액 가운데 대형마트 매출액은 2월부터 소폭 감소 추세지만 백화점 매출액은 3월 1조6522억 원, 4월 1조6456억 원으로 비슷하다.

자동차 내수 판매는 1∼5월 52만1277대로 전년 동기 대비 5.2% 증가했다.

○ 체감경기 따로, 소비 따로

휘발유 소비량이 줄지 않는 원인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견해차가 크다.

다수의 전문가는 휘발유가 필수재여서 ‘가격탄력성’이 작기 때문에 소비가 줄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가격탄력성은 상품 가격이 오르거나 내릴 때 수요가 얼마나 변화하는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1보다 크면 탄력적, 1보다 작으면 비탄력적이다. 산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에서 휘발유의 단기 가격탄력성은 0.167∼0.209로 극히 비탄력적이다. 이는 가격이 1% 오를 때 소비는 0.2%만 줄어든다는 의미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지훈 연구원은 “휘발유 가격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소비자들이 아직까지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느끼는 임계치에 이르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사용액, 백화점 매출액 등에 대해서는 일종의 ‘소비 착시’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상무는 “소비액 증가는 ‘소비량 증가+가격 인상분’으로 구성된다. 해외 소비액의 경우 소비량 증가에 환율 상승분이 추가된다”고 설명했다. 5월 소비자물가와 평균환율은 전년 동월 대비 각각 4.9%, 11.7% 올랐다.

또 주류 소비 증가와 관련해 주류업계에서는 “과거의 예로 볼 때 경기가 불황일 때 술이 더 잘 팔린다”고 설명한다. 일부에선 소비지표들이 뚜렷한 감소 추세를 보이지 않는 것은 서민은 줄이고 부자는 늘리는 소비 양극화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은행 통계조사팀 허상도 과장은 “경제 주체들이 아직까지 위기를 충분히 체감하지 못해 소비 구조조정까지 시차가 나타나는 것”이라며 “조만간 체감경기와 일치되는 소비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신용카드 이용실적 (단위: 원)
시기국내 신용카드해외 신용카드
2007년 2분기102조5000억1조1100억
3분기102조3000억1조2230억
4분기112조2000억1조2660억
2008년 1분기112조5000억1조2960억
자료: 금융감독원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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