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사료 완화 한국 속여” “美조치는 되레 강화된 것”

  • 입력 2008년 5월 14일 02시 59분


설명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13일 열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한미 FTA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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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왼쪽)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13일 열린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 한미 FTA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재협상하라”통합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13일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 장관고시 유예 및 재협상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오른쪽 앞은 인사말을 하고 있는 손학규 대표. 박경모 기자
“재협상하라”
통합민주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13일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 장관고시 유예 및 재협상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오른쪽 앞은 인사말을 하고 있는 손학규 대표. 박경모 기자
美 사료금지 조치 ‘완화 vs 강화’

野 “불합격 소 뇌-척수도 사료로 쓰게 돼”

정부 “美 통제능력 높아져 내용 달라졌다”

《여야는 13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의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청문회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을 두고 뜨거운 공방을 벌였다. 사실상 쇠고기 협상 청문회였다.

통합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 의원들은 “졸속협상을 바로잡는 길은 재협상이 유일한 해법”이라며 목청을 높였으나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등 정부 측 답변자도 물러서지 않은 채 “여론 악화만을 이유로 재협상을 할 수는 없다”고 맞섰다.

특히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정부의 책임을 거듭 추궁하며 “그렇게 답변할 거라면 퇴장하라”고 으름장을 놓자 “그럼 퇴장하겠다”고 맞서 한순간 냉랭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민주당 김재윤 의원이 “이런 답답한 사람이 있나”라고 언성을 높이자 “사람이라니, 말씀 조심하십시오”라고 맞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지난달 25일 입안 예고한 ‘사료금지’ 조치가 강화냐 아니냐를 놓고 공방이 이어졌다.

미국은 광우병의 원인으로 지목돼 온 ‘소의 부산물을 소 사료로 쓴다’는 행위를 1997년 불법화한 데 이어 소 부산물 가운데 광우병 유발 가능성이 있는 부위는 돼지나 닭에게도 주지 않는다는 ‘강화된 사료조치’를 올 4월 합의 때 한국에 약속한 바 있다. 이는 청와대가 12일 “FDA의 관보 게재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 오역(誤譯)이 있었다”고 시인했던 대목이다.

야당 의원들은 “미국이 2005년 이미 예고한 내용보다 지난달 한미 간 합의한 내용이 후퇴했다”며 정부를 몰아세웠다.

민주당 김종률 의원은 “정부 발표와 달리 미국은 오히려 생체 검사에 불합격한 소도 30개월 미만이라면 뇌와 척수를 제거하지 않고도 동물성 사료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며 “대폭 완화된 조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미국이 ‘도축검사를 받을 수 없는 상태로, 식용 부적합 처리된 소는 30개월 미만일지라도 뇌와 척수가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물 사료로 줄 수 없다’고 2005년 10월 입안 예고했다”며 “이번에 한국 몰래 완화된 조치를 발표해 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의 광우병통제능력이 2005년보다 2008년이 높아졌다는 평가인 만큼 사료조치 내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폈다. 미국은 2007년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광우병 통제가능한 나라”라는 등급을 부여받았다.

김 본부장은 오히려 “이번 조치는 과거보다 강화된 것으로 협상 성과의 하나”라고 맞받았다. 그는 “미국은 오랫동안 소 등 (되새김질을 하는) 반추동물로 만든 사료를 닭 돼지 등에게 먹여 왔다”며 “이런 방식이 앞으로는 대폭 금지되는 만큼 이번 한미 간 합의는 강화된 조치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윤호중 의원은 청문회 말미에서 “청문회를 통해 이명박 정부가 협상 타결 시점까지도 미국이 내놓을 ‘사료조치’의 내용이 2005년 안과 다르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 영상 촬영 :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졸속협상 vs 연속협상

野 “美 요청 하루만에 협상개시 상식밖”

정부 “과거부터 이어져온 협상 계속한 것”

민주당 정의용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협상이 과거 정부보다 많이 후퇴했다고 꼬집었다. 정 의원은 “한국 정부가 미국이 ‘강화된 사료 조치’ 계획을 ‘이행’ 대신 ‘발표’하는 시점부터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합의해 버렸다”며 그 이유를 따졌다.

즉 광우병 위험이 있는 소의 부산물을 닭 또는 돼지에게 먹일 수 없다는 이른바 ‘강화된 사료 조치’를 미국이 시행도 하기 전 정부 관보(官報)에 공포(公布)하는 시점에 수입을 개시하기로 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한국으로선 구두약속 시점인 ‘공표 때’보다 실제 이행시점에 쇠고기를 수입하는 게 더 좋다. 그러나 미 업계가 저항했다”고 답했다.

미 축산업계에서 닭 돼지가 먹을 사료에 소 부산물이 포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6∼12개월의 시간이 걸리며, 큰 비용을 들여 축사시설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반발이 컸다는 게 김 본부장의 설명이다.

그는 이어 “미 업계에서는 강화된 사료조치를 통해 (광우병 위험을 없애는) 과학적 효과를 0.001% 높이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너무 쓰는 것이라는 논의가 있었다”고 답했다.

한편 민주당 김종률 의원은 이날 미 무역대표부(USTR)가 협상 시작 하루 전인 4월 10일 보내온 ‘협상 개시 요청’ 공문을 제시했다. 김 의원은 “국가 간 협상을 하루 전에 (워싱턴에서) 요청하고, (서울에서) 협상을 시작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급박한 협상 개시 배경을 물었다.

같은 당 윤호중 의원은 “갑작스레 시작하는 바람에 경제장관 조정회의 한 번 열지 못한 게 오늘 확인됐다”며 부처 간 조율 부족을 질타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과거부터 이어진 협상을 계속하는 만큼 느닷없는 협상 개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답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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