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재계 파워엘리트]현대중공업그룹

  • 입력 2008년 5월 6일 03시 00분


조선분야 ‘글로벌 명가’의 엔지니어 CEO들

현대중공업그룹은 세계 조선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이다.

압도적인 세계 1위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4위 현대미포조선, 5위 현대삼호중공업 등 세계 10대 조선업체 중 3곳을 계열사로 둔 덕분이다. 오대양을 누비는 대형 선박 5척 중 1척은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소에서 진수됐다는 말도 나온다.

선박 건조 외에도 선박용 대형 디젤엔진, 해상 원유생산설비(FPSO), 이동식 발전설비 등 8개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어 관련 업계에서는 ‘명품(名品) 그룹’으로 통한다.

현대중공업그룹은 9개 계열사를 거느린 자산총액 기준 재계 서열 8위(민영화된 공기업 포함, 올해 4월 1일 기준)의 그룹이다. 그룹의 최대 주주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은 현재 그룹의 공식 직함을 전혀 갖고 있지 않고 경영도 민계식 현대중공업 부회장 등 전문 경영인들에게 맡기고 있다.

○ 엔지니어 출신 CEO들

현대중공업그룹 최대 주주인 정 의원은 울산 본사는 물론 자택과 가까운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 내 서울사무소도 좀처럼 찾지 않는다. 경영에서 손을 뗀 이상 전문 경영인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는 회사 방문을 최대한 자제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 덕분에 현대중공업그룹 주요 CEO들은 다른 그룹 CEO보다 재량권이 많아 독립적인 경영을 한다는 평을 듣는다.

이들은 현장에서 30년 이상 근로자들과 부대끼며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 출신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현장과 기술을 중시하는 그룹 전통에 따라 엔지니어 위주로 회사가 움직이기 때문. 다만 ‘회사 살림’은 잘하지만 사회 공헌에는 다소 관심이 소홀하다는 말도 나온다.

대표적인 CEO는 그룹의 주력사인 현대중공업을 이끌고 있는 민계식 부회장. 민 부회장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해양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선박 전문가로, 대우조선 전무로 있다가 1990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스카우트했다.

경영을 하면서도 지금까지 80종의 기술 보고서와 180편의 논문을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하는 등 웬만한 교수도 따라 하기 힘든 연구실적을 냈다. 여기에다 220여 건에 이르는 국내외 조선 관련 특허도 보유해 한국 조선 신화의 ‘산증인’으로 통한다. 최근에는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자상’을 받았다. 마라톤 풀코스를 200회 이상 완주한 달리기 마니아이기도 하다.

최길선 현대중공업 사장은 그룹 내 3대 조선 계열사 사장을 모두 지내 ‘직업이 조선소 사장’이라는 평을 듣는다. 1997년 현대삼호중공업 전신인 한라중공업, 2001년 현대중공업, 2004년 현대미포조선 사장을 거쳐 2005년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컴백했다. 조선소 현장에서 36년을 보낸 현장형 CEO로 요즘도 600만 m²(약 180만 평)에 이르는 울산조선소 작업장을 직접 둘러보며 직원들과 대화 나누는 것을 즐긴다.

송재병 현대미포조선 사장도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본부장과 해양사업본부장을 지낸 엔지니어 출신 CEO다. 시장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고부가가치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자동차운반선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등 경영 감각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황무수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은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본부에서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 1972년 입사 이후 조선선각설계부를 시작으로 생산과 품질, 시운전, 애프터서비스 부서 등을 거쳤다. 1994년 현대중공업이 국내 최초로 LNG운반선을 건조할 때 담당 임원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민 부회장을 비롯해 최 사장, 송 사장, 황 사장은 모두 해당 계열사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 대기업 CEO급인 현대重 본부장들

현대중공업 ‘본부장’ 자리는 CEO로 가는 길목으로 통한다.

그룹 전체 매출의 4분의 3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있는 현대중공업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본부별로 연간 매출이 수조 원을 넘어 본부장은 웬만한 대기업 CEO보다 권한이나 책임이 크다.

본부장 가운데 선임은 해양, 플랜트사업본부를 총괄하고 있는 김광명 사장. 김 사장은 현대건설 사장을 지낸 베테랑 경영인으로 현대중공업이 플랜트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2006년 영입했다. 현대건설 시절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하는 등 중동지역에서 대형 공사를 따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평.

조선사업본부장인 최원길 부사장은 ‘본부장 중 본부장’으로 통한다. 현대중공업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선박 건조 분야를 책임지고 있어서다. 일일이 지시하기보다는 부하 직원에게 권한을 줘 능동적으로 일하게 하는 스타일.

해양사업본부장인 오병욱 부사장은 고교 수학 교사를 하다가 현대중공업에 입사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 2003년 육상에서 대형 선박을 건조하는 공법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현대중공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플랜트사업본부장인 한동진 부사장은 현대건설 플랜트사업본부장을 거친 플랜트 전문가. 적극적인 성격으로 조직 내 상하 간 신뢰가 두텁고, 세계 유수의 건설회사 최고경영자와 폭넓은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재산이다.

김영남 현대중공업 부사장은 태양광, 신(新)재생에너지 등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전기전자시스템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다. 해외영업 분야에서 오랜 기간 일하다가 그룹 내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전기전자사업 분야를 맡아 단기간에 그룹 핵심사업 분야로 성장시키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건설장비사업본부장인 박규현 부사장은 건설장비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중장비맨’. 엔지니어, 생산, 구매, 자재, 지원 등 건설장비 분야에서 안 거친 부서가 없다. 현장 직원들의 경조사를 직접 챙기는 자상한 성격.

엔진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는 유승남 전무는 선박 엔진의 모두 분야를 섭렵한 엔진의 달인. 현대중공업이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제작한 선박 엔진인 ‘힘센 엔진’ 개발의 주역이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 ‘엔지니어 왕국’ 지키는 재무통 임원들 ▼

현대중공업그룹은 ‘엔지니어의 왕국’으로 불리지만 재무 분야 임원들의 활약도 만만치 않다.

부침이 심한 경기 상황 속에서 안정적 현금 유동성 확보와 위험 회피를 통해 현대중공업의 바람막이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경영지원본부장인 이재성 부사장은 1975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했지만 1992년부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조정실장 등을 거친 뒤 1997년 다시 계열사인 현대선물(先物) 사장으로 컴백하기까지 경제의 이론과 실제를 두루 경험했다. 특히 일찍부터 환(換)위험 헤지(위험회피)와 원자재 수급 대책 등을 세워 회사가 ‘사상 최고 실적’ 행진을 이어가는 데 기여했다.

이 회사 기획실장 및 최고재무관리자(CFO)인 이수호 부사장은 현대중공업에서 흔치 않은 외부 영입인사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30여 년간 근무해 글로벌 경제 감각을 갖춘 ‘실력파’로 알려져 있다. 이 부사장은 향후 기업 인수합병(M&A) 분야에서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손영률 현대미포조선 부사장은 회계 및 경영기획에서 잔뼈가 굵은 재무 전문가다. 1975년 입사 이래 줄곧 재무 분야에서 근무하다 임원 승진 이후에는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등을 거쳤다. 현대중공업 복귀 후에는 자재 관련 업무까지 맡았다.

박철재 현대삼호중공업 부사장은 1975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뒤 현대증권과 현대중공업 등에서 재무, 경리 업무를 담당했다. 2005년부터 현대삼호중공업 경영지원부문을 총괄해 오고 있는데, 재무구조 개선을 통한 무(無)차입 경영을 실현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편 1997년부터 서울사무소장을 맡고 있는 권오갑 부사장은 1978년 입사 이후 오랫동안 홍보 등 대외업무를 맡았으며 학계, 체육계, 언론계 등에 인적 네트워크가 두텁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 ‘2008 재계 파워엘리트’ 시리즈는 매주 화 목요일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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