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메리츠 지분대결 시작…제일화재 주식 급등

  • 입력 2008년 4월 23일 03시 01분




한화그룹이 적대적 인수합병(M&A) 위기에 놓인 제일화재의 ‘백기사’로 나서면서 제일화재를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22일 제일화재 주식 약 60만 주가 한화증권을 통해 집중적으로 매입됐다”며 “한화그룹이 제일화재 주식 매집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날 제일화재 주가는 전날에 비해 2300원(14.7%) 급등한 1만7950원으로 마감해 5거래일 동안 73.43%나 급등했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는 이날 제일화재를 23일자로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했다.

○ 시간 싸움에서는 메리츠화재 쪽이 유리

한화그룹은 이날 금융위원회에 한화건설, 한화L&C, 한화갤러리아, 한화리조트, 한화테크엠 등 5개 계열사가 제일화재 지분을 인수하는 것을 승인해달라는 서류를 제출했다.

보험업법에 따르면 한화 계열사는 제일화재 최대주주(김영혜 씨)의 특수 관계인이어서 제일화재 지분을 1% 이상 사려면 금융당국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 김 씨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누나이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2주일에 한 번 열리는 금융위에서 결정을 내린다”며 “법적으로는 60일 이내에 결정하도록 돼 있으며 이번 결정에도 1개월 이상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비해 메리츠화재와 그 계열사는 개별 회사가 제일화재의 대주주(10%)가 되기 전까지는 주식을 사 모을 수 있다. 다만, 메리츠화재와 그 계열사가 보유한 총 지분을 현재 제일화재의 최대주주 지분(20.68%) 이상으로 끌어 올리려면 금융당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메리츠화재 측은 “김 씨에게 보낸 인수제안서에 답변이 오지 않으면 25일부터 주식을 최대한 사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촌각을 다투는 지분 확보 싸움에서 메리츠화재 측이 일단 유리한 위치에 있는 셈이다.

○ 양측, 결국은 공개매수 대결할 듯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주가가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어 양측이 시장에서 주식을 많이 사 모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따라서 양측은 금융당국에서 지분 취득 승인을 받은 뒤 특정 주가로 인수 가격을 고정할 수 있는 ‘공개매수’ 방식으로 지분 확보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제일화재가 ‘제3자 배정방식’의 유상증자를 통해 한화에 지분을 몰아주는 방안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M&A 성패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KB자산운용, 그린화재 측이 주가 하락을 우려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 증시 전문가들 “메리츠화재, 잃을 게 없다”

전문가들은 한화 측이 강하게 반발하는데도 메리츠화재가 적대적 M&A를 노리고 있는 이유는 지금이 손보사 대형화의 적기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이철호 연구원은 “대기업 집단이나 시중은행들이 보험사 인수를 잔뜩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이라도 시장에 남아 있는 보험사를 M&A하지 않으면 영영 성장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K증권사 관계자는 “메리츠화재는 M&A에 성공하면 손보업계 3위를 넘볼 수 있을 만큼 기업 가치가 오른다”며 “실패하더라도 이미 사들인 제일화재 지분의 매입단가가 1만 원 안팎에 불과해 나중에 큰 주가차익을 올릴 수 있어 잃는 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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