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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2월 16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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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여자친구 사귀는 것 배웠다
내 곁엔 ‘브라더’가 있다
1.입사 시험땐 지원자 부모에 情담긴 편지
두산중공업은 ‘얼마나 좋은 인재를 많이 뽑았는지’보다 ‘인재를 뽑아서 얼마나 그들에게 로열티를 심어 주었는지’에 대해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2006, 2007년 신입사원 202명 중 현재까지 퇴사자는 2명에 불과하다. 비율로 약 1%다. 최근 일반 제조업체 신입사원의 입사 1년 내 이직률이 12∼15%로 알려져 있는 것에 비하면 극히 낮은 수치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특유의 ‘휴머니즘’이 조직문화에 녹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화(人和)를 모토로 하는 두산그룹의 전통적인 가치에 ‘사람의 성장이 사업의 성장을 이끈다’는 두산중공업의 ‘2G(Growth of People-Growth of Business)’ 전략이 맞물려 이 같은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두산중공업은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1년 동안 ‘인큐베이팅 과정’을 겪도록 한다. 신입사원 전원에게 ‘브라더’라는 이름의 전담 선배가 붙는데, 이들이 신입사원의 업무영역을 지도해 주고 개인적 고충을 들어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지난해 발전소 분야로 입사한 임태원(28) 씨는 같은 팀의 여자 선배를 ‘브라더’로 배정받은 케이스. 그는 “한마디로 직장생활에서 부딪치는 모든 문제를 상담할 수 있다. 심지어 재테크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여자친구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은지까지 조언을 해 준다”고 말했다. 브라더들이 입사 100일, 1주년을 기념해 신입사원들을 모아 백일잔치와 돌잔치를 열어 주는 것도 전통이다.
두산중공업은 신입사원 채용 때부터 지원자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며 ‘따뜻한 이미지’를 남기는 데 신경을 쓴다. 최종 면접을 앞둔 지원자에게는 부모 앞으로도 편지를 보낸다. ‘지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판에 박힌 글귀 대신 사람 냄새 풍기는 문장으로 채워 넣는다.
‘귀댁 자녀의 전형과정을 지켜보면서…(중략)…비록 제 자식은 아니지만 제 자식만큼이나 안타깝고 서운했던 적도 있었고, 반대로 즐겁고 보람 있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지난해 김명우 인사담당 상무가 지원자 부모에게 보냈던 편지의 일부분이다.
2.“점령군은 없다”… M&A 기업 경영진 유임시켜
2007년 2월 두산중공업이 영국의 ‘미쓰이밥콕’을 일본 미쓰이물산으로부터 인수해 ‘두산밥콕’을 설립했을 때다. 두산중공업은 서울 전략회의에 두산밥콕의 최고경영자인 이언 밀러 사장 등 7명의 현지 임원들을 초대했다. 기업문화를 소개하고 경영철학을 공유하자는 취지였다.
당시 밀러 사장은 “일본 기업이 소유주였던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는 한 번도 일본에 초청받아 간 적이 없다. 파격적인 의전에 감사한다”고 진심어린 사의(謝意)를 표했다고 한다.
두산중공업은 한국에서 사장을 보내지 않고 밀러 사장과 현지 경영진을 유임시키면서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이 덕분인지 수년 동안 매출이 정체돼 있던 밥콕은 지난해 매출액 9300억 원을 올려, 전년에 비해 32%가량의 실적 상승을 이뤄냈다.
지난해 5월부터 밥콕의 평직원도 초청해 자사 계열사인 두산인프라코어와 두산엔진 사업장 등을 견학시키고 있다.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은 “두산중공업과 밥콕의 구성원들이 소통하면서 서로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어떤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지 답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의 사무직 직원 3000명 가운데 85% 이상이 이공계열 전공자들이고, 발전 담수 플랜트 등 5개의 사업부문 중 4개의 부문장들이 모두 엔지니어 출신이다.
배균호 기획조정실 차장은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도 엔지니어로서의 자아실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지원자를 많이 의식하는 편이다. 자연히 ‘엔지니어 프렌들리(친화)’ 업무여건이 조성돼 있다”고 말했다.
3.‘엔지니어 프렌들리’ 문화 강점… 노사관계 숙제도
배를 주로 건조하는 다른 국내 중공업 업체와 달리 두산중공업은 발전소 및 그와 관련된 기자재의 제작, 설치, 운전 등을 담당한다. 설계-조달-건설을 일괄 수행하는, 이른바 EPC(Engineering, Procurement & Construction) 사업이라 엔지니어로서는 ‘스페셜리스트’의 꿈을 키우기에 적합한 곳으로 평가받는다.
사내 엔지니어들은 또 ‘빅 스쿨(The Business Intelligence Group School)’과 ‘엔지니어 역량 향상교육’ 등 다양한 사내 교육 프로그램 수강 혜택도 받고 있다.
두산중공업이 지금의 위치에 오르는 과정에는 시련도 있었다.
두산중공업의 모태는 1962년 고(故)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이 만든 현대양행이다. 1980년 신군부가 발전설비 통합 방침을 세우고 공기업인 한국중공업에 현대양행의 발전 플랜트 설비가 있는 창원공장(현재의 본사)을 강제로 합병시켰다. 다시 2000년 정부의 공기업 우량화 방침과 맞물려 민영화 작업을 거치게 됐고 2001년 3월부터 두산이 정식 인수하며 현재의 이름을 얻게 됐다.
이후 대우종합기계 미쓰이밥콕 등 다양한 국내외 업체들을 합병하며 덩치를 키워왔다. 지난해에는 매출 4조895억 원, 영업이익 2833억 원으로 창사 이래 46년 만의 최대 실적을 거두기도 했다.
두산중공업은 민영화 시기를 즈음해 1000명에 달하는 노동자의 구조조정을 단행한 아픔이 있다. 이 과정에서 잦은 파업과 근로자 배달호 씨의 분신사건이 발생하는 등 노사갈등이 고조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두산중공업은 21년간 배어왔던 공기업 색채를 좀 더 빼내 업무효율성을 더 강화하는 것과 함께 비교적 안정국면으로 접어든 노사관계 역시 좀 더 신뢰수준을 높이는 것을 중장기 과제로 삼고 있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