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부 섣부른 중재, 노조 불법파업 악순환 불러”

  • 입력 2008년 2월 13일 04시 47분


이수영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인터뷰

“노조는 항상 정부가 바뀌면 새 정부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흔들어보려 합니다.”

“지난 10년간 정부는 노조와 부대끼는 것을 피했는데 이는 정부이기를 포기한 처사입니다.”

이수영(사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11일 서울 마포구 서강로 경총회관 집무실에서 이뤄진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의 노동문제와 정부 규제 등 국가경쟁력 전반에 대해 고언(苦言)을 했다.

노동계에 대응해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인 경총의 수장(首長) 이 회장이 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 이후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현 정부의 섣부른 중재가 노조의 기대치를 높이면서 불법 파업의 악순환을 불렀다”며 “정부가 특정 집단이나 계층을 대변해서는 경제가 살아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인터뷰 전 직접 답변 자료를 만들었고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진지한 표정으로 답변을 숙고하는 모습이었다.

―기업 친화적 성향의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민주노총이 강경 투쟁을 선언하고 있다.

“노조는 항상 정부가 바뀌면 새 정부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흔들어보려 한다. 이번에는 전기를 끊고 가스를 끊겠다는 것 아닌가. 엄연히 불법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

(이 회장은 민주노총 지도부가 이날 한미 자유무역협정 저지 투쟁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는 소식에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한국 노동운동의 현 상황에 대한 평가는….

“전환기다. 근로자들이 전투적인 노동운동에 식상해 있는 분위기다.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데 민주노총 등 일부 단체는 오히려 과격한 구호를 외치는 등 거꾸로 가고 있다. 이는 위기감의 반증이기도 하다. 노동운동의 프로그램을 바꿔야 하는데, 아직 못 찾은 것 같다. 변화의 시기가 왔을 때 모두가 함께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해법이 있나.

(한참 생각한 후) “시간이 가야 해결될 문제이고, 저절로 해결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다만 국민들이 변화하기를 요구하고 있고 대다수 노조원도 어느 정도 수용할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변화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한국노총 모델인 대화와 타협으로 갈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의 노사정책에 대한 평가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2003년 근로자의 고용과 해고를 손쉽게 하는 내용의 ‘어젠다 2010’ 개혁안을 내놓아 ‘유럽의 병자(病者)’로 불리던 독일 경제를 부흥시켰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짊어져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러나 현 정부는 노조와 부대끼는 것을 피했다. 이는 정부이기를 포기한 처사다. 정부는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되는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원리다. 정부가 특정 집단이나 특정 계층을 대변해서는 경제가 살아날 수 없다.”

―국가경쟁력 강화가 화두가 되고 있다. 기업인으로서 생각하는 해법은….

“평등한 사회를 원하고 더 나은 삶을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더 역동적으로 생각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하게 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개인의 창의력과 노력은 법으로 보장받아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방치했고, 개인의 창의력과 노력을 규제라는 틀로 옥죄었고, 법 위반자에 대해 온정적으로 대처하면서 성실히 살아가려는 사람의 의지를 약하게 만들었다. 공정하고 형평에 맞는 사회를 만드는 게 궁극적인 해법이다. 다 잘살자고 외치지만 최근 법과 질서를 무시하다 보니 다 못살게 됐다.”

이 회장은 규제 완화의 중요성을 설명하기 위해 축구경기를 예로 들기도 했다.

“지금은 축구 경기장 안의 주심이 10명이나 되는 상황이다. 심판들은 모두 할 일이 있어야 하므로 매번 호루라기를 불어 경기를 중단시킨다. 경쟁력은 공정경쟁을 훼손하지 않는 한 신나게 뛰어다니며 공을 차는 것인데 심판이 너무 많아 경기가 안 된다. 정부가 별걸 다 참견하다 보니 국민이 혼란스럽고, 창의적인 생산 활동을 하려는 마음이 꺾인다는 것이다.”

―규제 완화로 대기업만 혜택을 본다는 주장이 있다.

“규제가 많으면 중위나 하위 계층이 더 못산다. 일반 국민이 생활하면서 들러야 할 곳이 너무 많고, 갈 때마다 간접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기업은 규제가 있어도 해결할 역량이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이나 서민은 여유가 없다. 법도 간단명료해야 국민이 따라갈 수 있다. 지금은 너무 복잡하다 보니 막연하고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이슈인데….

“정치인들이 마치 비정규직 문제를 금방 해결할 것처럼 떠든다. 그런데 아무리 떠들어도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 안 된다. 지금은 일단 비정규직법이 통과된 만큼 현행법을 지켜 가면서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 시행하자마자 기업이 ‘악용’한다고 하면 교훈을 얻을 수 없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 회장은 경영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경영자도 투명경영, 윤리경영을 해야 강해지고 설득력이 생겨 노조도 수긍한다”고 강조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이수영 회장은:

1942년 개성 출생. 경기고, 연세대 행정학과 졸업. 지난해 작고한 ‘마지막 개성상인’ 이회림 동양제철화학 창업주의 장남. 1996년 동양제철화학 회장에 올랐고 2004년부터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맡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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