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경영]현금은 물론 특허도 지원… 새 부가가치 창출해

  • 입력 2007년 11월 2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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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 무엇이 달라졌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크기를 막론하고 기업끼리 거래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상생협력은 과거의 협력과 무엇이 다를까.

기존 협력은 업무 분배에 따른 단순 분업의 성격이 강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필요로 하는 물품을 만들고 대기업은 이를 받아서 완제품을 만드는 선에서 그쳤다.

상생협력은 새로운 가치를 함께 창출하는 걸 지향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기업의 단순한 비용 절감 차원이 아니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함께 창출하면서 ‘파이를 키우는 방식’을 추구한다.

땅에서 수분과 양분을 빨아들인 나무가 열매를 맺은 뒤 낙엽을 땅에 뿌림으로써 토질을 비옥하게 만들어 더 멋진 열매를 맺는 이치다.》

○ 자금 지원을 넘어 가치 창출로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자금 지원. 협력업체의 물품대금을 현금으로 결제해 주고 필요한 운전 자금을 저리로 빌려 주는 방식이다. 롯데마트와 한진해운, 한국공항, KT 등이 납품대금 결제를 현금으로 하고 있다. 삼성전자 포스코 등은 중소기업이 납품실적과 신규 계약을 담보로 은행 자금을 싸게 빌릴 수 있는 ‘네트워크 론’ 제도를 시행 중이다.

대기업들은 운전 자금 이외에 경영 혁신, 품질 교육, 기술 개발, 시장 개척 등도 지원한다. 최근 단순한 자금 지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가치창출형 공동기술개발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추세다.

삼성전기는 중소기업인 연호전자와 발광다이오드의 핵심 부품인 리드프레임을 공동 개발했다. 연호전자는 이 기술 개발로 3년간 1000억 원의 신규 매출과 2년간 200명의 고용창출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T는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KT나랏글’의 소스 프로그램을 중소기업에 무상 지원하고 있다. LS전선도 활용하지 않는 특허의 중소기업 이전에 적극적이다.

중소기업의 기술을 끌어올리기 위해 기술 컨설팅을 제공하고, 협력업체 연구원을 대기업 연구소로 불러 공동연구를 진행하기도 한다.

기술 혁신을 통한 중소기업의 역량 강화는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요즘 중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일본의 ‘기업 생태계’가 생존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 지적이다. 일본의 우수 부품 기업들은 대기업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치 제공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공정한 거래와 성과 분배는 필수

현대중공업은 협력업체의 제안으로 이익이 발생하면 이익금의 절반을 협력회사에 돌려주는 ‘성과공유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전과 포스코, LG전자 등도 비슷한 제도를 운영한다.

공정한 거래도 신뢰 형성의 중요 요소다. 삼성전자는 협력회사 종합평가 때 평가항목을 미리 공개하는 방식으로 공정한 평가 문화가 정착되도록 노력 중이다. 대기업들의 잇단 윤리경영 도입도 공정 거래에 기여하고 있다.

불공정한 거래와 편파적인 성과 분배는 상생을 통한 가치 창출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성과 분배가 불확실하면 협력에 참여한 경제주체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다.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이 불분명하다면 모두의 성과를 떨어뜨리는 ‘나쁜 선택’을 하게 되는 것.

가장 바람직한 상생협력의 모델은 공정한 거래와 성과 분배로 구축한 신뢰를 통해 비전과 철학까지 공유하는 형태다.

상생경영 연구를 위해 올해 일본을 방문했던 서울여대 이종욱(경제학) 교수는 “도요타의 협력업체들은 도요타의 비전과 경영철학을 뼛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 제조업에서 유통·건설로 확산 중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에 따르면 30대 그룹의 상생협력 지원액은 2005년 1조401억 원에서 올해는 2조782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자금 지원을 포함한 각종 지원 활동에 들어간 금액을 합산한 수치다.

지원 규모가 늘어나면서 제조업 중심의 상생협력 활동이 유통이나 건설 분야로도 확산 중이다. 신세계는 직접 매입한 상품을 반품하지 않는 방식으로 협력업체의 부담을 덜어 주고 있고 이마트와 신규 거래를 원하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상품박람회를 개최해 거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금호건설은 구매대행 관리를 통해 협력회사의 구매 원가 절감을 돕고 있다.

상생협력 체계 구축을 위한 전담조직 구성도 늘고 있다. 30대 그룹의 상생협력 전담조직은 2005년 8곳에 불과했지만 2007년에는 19곳으로 늘었다. 특히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상생협력 전담팀을 꾸리면서 베인앤드컴퍼니의 컨설팅까지 받았다.

자유무역협정(FTA) 체제로 시장의 글로벌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상생협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서울대 김수욱(경영학) 교수는 올해 8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국제컨퍼런스에서 “국제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에 해외 시장 확대라는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며 “국내형 상생에서 글로벌 상생으로 ‘상생협력’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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